삼성동 서울의료원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강남 요지인 강남역 근처에 서초삼성타운을 조성해 계열사들을 한데 모았지만, 삼성전자만 해도 지난 4∼5년 새 급성장하면서 필수 조직들이 인근 빌딩에 산재해 있을 정도로 공간부족 때문에 애를 먹어왔다”면서 “내부적으로는 2년 전부터 제2삼성타운을 마련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업계에는 삼성그룹이 지난해까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사옥 건설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7년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코레일의 용산역세권 부지를 8조 원에 매입한 상태여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경기침체 와중에 코레일과의 투자약정 이행, 부지가격 책정 등에 대한 협상이 결렬돼 사업 자체가 무산되면서 삼성그룹의 제2사옥 건설 추진은 보류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그룹이 용산지구에 이어 한전 부지 인수에도 실패한 만큼 삼성그룹의 부지 물색은 진행 중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중론이다.
일각에선 삼성그룹이 한전 부지 인근에 위치한 서울의료원 부지 입찰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서울의료원 부지(2만 2650㎡)는 삼성생명이 4년 전 매입한 옛 한국감정원 부지(1만여㎡)와도 맞닿아 있어 삼성그룹 차원에서 개발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여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의료원 부지는 한전 부지의 40% 규모지만, 그에 못지않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시각이다. 서울시는 ‘코엑스∼한전 부지∼서울의료원∼잠실종합운동장’을 잇는 72만㎡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조성할 방침인데, 서울의료원 부지는 그 정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한전 부지에 버금가는 개발의 요지인 셈이다.
서울시는 서울의료원 부지에 대한 용도지역 상향이 확정되면 10월 중 감정평가를 실시한 뒤 매각 절차를 본격화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도 입찰 참가자 중 최고가를 써낸 업체에 낙찰하는 방식이다. 공시지가는 지난해 말 기준 2540억 원이지만, 한전 부지가 감정가보다 3배 이상 높은 가격에 매각돼 낙찰 가격이 얼마가 될지도 관심이다.
삼성그룹은 일단 서울의료원 부지 입찰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지난 1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이준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수요사장단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이달 중 추진할 서울의료원 부지에 입찰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검토되고 있는 건 없는 걸로 안다”고 답했다. 부동산업계에서도 삼성동 재개발의 주도권이 이미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그 자투리땅에 투자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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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삼성그룹이 과거 KTX의 연장선을 삼성역으로 정하는데 관심을 보였을 정도로 삼성동 일대 개발에 대한 애착을 가져온 터여서 당초 계획했던 ‘삼성ICT타운’ 정도의 대규모 개발은 아니더라도, 중간 규모의 개발을 염두에 두고 부지를 미리 확보해둘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호텔신라가 면세점 사업 등을 확장하기 위해 삼성동 일대의 호텔 매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한전 부지 인수전에서는 삼성그룹이 극비 전략으로 나왔던 만큼 서울의료원 부지 인수전에도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서울의료원 부지 외에 서울 시내 알짜 땅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파다하다. 우선 서초삼성타운 인근의 공공기관 이전 부지들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서초동에 위치한 정보사 부지(16만 6235㎡)가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지하철 2호선 서초역과 3호선 교대역 등이 인접해 교통은 물론 강남역 근처의 서초삼성타운과 가까워 업무연계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당초 서초구청은 정보사 부지를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등과 연계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밝혔지만, 정보사가 희망하는 매각 비용이 6000억 원 이상으로 높아 올해 진행된 매각에서 모두 유찰됐다. 현재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건립을 허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삼성그룹이 ICT타운을 포함한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을 경우 개발 계획 변경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주변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면동에 자리 잡은 한국교육개발원 부지(6만㎡)도 삼성그룹이 관심을 가질 만한 땅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는 전체 부지의 50% 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매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한국교육개발원이 2016년까지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해 규제 완화 등의 해결책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진다.
서초삼성타운 인근의 롯데칠성 부지는 이미 롯데타운 조성 계획이 잡혀 있어 이곳과의 상관성도 고려 대상이다. 롯데그룹은 이 일대에 지상 55층짜리 3개동 규모의 업무·상업시설을 갖춘 롯데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서를 낸 바 있다. 제2롯데월드 건설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한전 부지 경매가 재벌들 간 ‘쩐의 전쟁’으로 치달았던 만큼 향후 삼성그룹의 부지확보 향배에 따라 언제든지 ‘2차 쩐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