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제일초등학교 운동회날 달리기 시합을 하던 학생들이 몸이 불편한 김기국 군에게 다가와 함께 손잡고 뛰어 화제가 됐다.
모두가 즐거운 운동회였지만 제일초등학교 6학년 2반 김기국 군(12)은 달랐다. 연골무형성증(성장판에서 연골이 장골로 바뀌는 과정에 이상이 생겨 뼈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선천성 질병)으로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 수 없었던 기국 군에게 운동회는 피하고만 싶은 행사였다. 쑥쑥 자라는 키만큼 운동실력도 일취월장하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달리기는 기국 군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한참을 뒤떨어져 늘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해야 했기에 때론 운동회를 가지 않겠다며 울상 짓는 날도 있었다. 마지막 운동회가 열리는 그 날도 기국 군의 부모님은 어린 아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달리기 시합을 바라봤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기국 군이 달리기에서 처음으로 1등을 한 것이다. 친구 4명과 나란히 출발선에 선 기국 군은 잠시 앞서나가는 듯 했지만 이내 뒤처지고 말았다. 여러 장애물을 지나 운동장 반 바퀴를 도는 짧은 코스였지만 기국 군이 친구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기국 군은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긴 했지만 마지막 장애물까지 씩씩하게 넘은 기국 군.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야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벌써 달리기를 마치고 쉬고 있을 줄 알았던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과 동생들과 “기국이 형 이겨라”며 큰 목소리로 응원해줬다.
제일초등학교 전경.
“우리 다 일등이야. 울지 마.”
엉엉 우는 기국 군에게 친구들은 모두의 손등에 찍힌 1등 도장을 보이며 끝까지 최고의 순간을 선사해줬다. 이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 큰 감동을 안겨줬다. 1등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조금 늦더라도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택한 아이들의 표정은 더없이 해맑고 밝았다. 자신 때문에 빨리 뛰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기국 군의 모습 또한 가슴 찡한 감동을 안겨줬다.
기국 군만을 위한 멋진 이벤트는 알고 보니 친구들과 정인화 담임교사(53)의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지난해에는 정인화 담임이 홀로 남은 기국 군과 함께 달려줬지만 그마저도 상처가 될까 올해 운동회에 대한 걱정이 컸었다고 한다. 이런 고민은 담임교사뿐만 아니라 6년을 함께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국 군이 상처 받지 않는 운동회를 마련하고자 했고 그 결과 꼴찌 없는 달리기 아이디어가 나왔다. 담임교사는 사전양해를 구하기 위해 교장실까지 찾아갔고 설명을 들은 교장 역시 “못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차별이 없는 달리기를 만들어보자”는 제안까지 했다. 그렇게 탄생한 기국 군을 위한 달리기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뿐만 아니라 전국에 진한 감동을 전해줬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감동의 운동회 그 후 “왜 우릴 칭찬해요” 되레 어리둥절 사진 한 장이 몰고 온 파장은 대단했다. 제일초등학교 홍정표 교장은 “사진을 본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피자를 사주겠다며 전화를 걸어왔어요. 연예인에게도 연락이 올 정도였으니까요.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보니 아이들도 자신들이 큰 칭찬을 받고 있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왜 자신들을 칭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홍정표 교장은 내내 ‘당연한 일’이라며 겸손해했지만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요. 우리 아이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친구관계를 무엇보다 중요시합니다. 수년 전 자폐를 앓던 친구를 진심으로 대해준 아이들과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의 학교에서는 왕따가 됐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늘 친구로 함께했어요. 덕분에 그 학생은 창의력 부분에서 놀라운 천재성을 발견해 미국으로 유학까지 떠났습니다. 제 입장에선 이런 아이들의 예쁜 마음이 변치 말고 자라길 바랄 뿐입니다.” 이처럼 감동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따뜻함을 선물해줬지만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사진이 유명세를 얻자 일부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이 김기국 군의 체형을 지적하며 “관리나 하라”는 등의 악성댓글을 올려댔다. 이에 기국 군의 가족들이 나서 해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기국 군의 둘째누나인 빛나 양은 “동생이 키는 작지만 먹성은 일반 초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운동도 좋아하지만 많이 못할 뿐입니다. 동생에게 널 응원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만 너무 상처가 될 만한 글이 많아 조심스럽습니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모든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남들과 다른 동생의 모습을 인정하고 배려해준 덕에 6년 동안 큰 사고 없이 밝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몸이 불편한 분들을 잘못된 시선으로 보는 것보다 다르다는 것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국이뿐만 아니라 신체가 불편한 다른 사람들 에게도 따뜻한 응원과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