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주주총회를 통과했지만 주주들의 극심한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일단 삼성중공업 주주 입장에서 보면 삼성엔지니어링을 껴안는 게 분명 불리하다. 올 6월 말 기준 재무제표를 보면 삼성중공업은 자기자본이 5조 6508억 원, 부채가 12조 7493억 원이다. 그런데 삼성엔지니어링 자기자본은 9596억 원에 불과한 데다 부채가 5조 992억 원이나 된다. 양사가 합병하면 자본총계 6조 6104억 원, 부채 17조 8485억 원에 이른다. 부채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삼성중공업 주주 입장에서는 갚아야 할 빚의 절대 규모가 더 늘어나 이자 및 상환부담이 더 커진다.
그렇다고 삼성엔지니어링이 제 빚을 스스로 감당할 처지도 아니다. 올 3분기 전년동기 대비 흑자전환을 했지만, 직전분기 대비로는 영업이익 규모가 크게 줄었다. 연간 1000억 원 남짓한 이익으로는 5조 원이 넘는 빚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삼성중공업이 삼성에니지어링 빚을 대신 갚아야 하는 셈이다. 그나마 삼성중공업도 분기당 영업이익이 채 2000억 원도 안 된다. 18조 원에 달하는 빚의 이자만 감당하기도 버거운 수준이다. 양사 주가가 합병 발표 이후 떨어진 이유다.
지난 10월 27일 양사 합병 주총에서는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이 합병 안건에 반대나 기권을 행사했다. 차라리 매수청구권으로 주식을 회사에 넘기고 나오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 때문에 이날 주총에서 합병 안건은 총 발행주식수의 30%가 조금 넘는 수준에서 가결됐다. 30%대의 찬성률로 가결이 가능했던 것은 ‘섀도 보팅(Shadow Voting)’ 덕분이다. 섀도 보팅은 주총에 참석한 주식들의 찬반 비율을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식에 그대로 적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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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 관계자는 “합병으로 기업가치가 오히려 더 훼손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배임 책임을 피하려면 반대나 기권 표를 던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NICE신용평가는 지난 9월 1일 양사 합병 발표가 났을 때 중장기적으로 시너지 창출 등의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삼성중공업의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러자 삼성중공업은 10월 29일 2886억 원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일단 주총에서 합병이 가결된 만큼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준일인 11월 17일 주당 2만 7003원을 넘어선다면 큰 자금부담 없이 합병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을 풀어 주가 부양에 나섰지만 효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사주 매입에도 양사 주가는 여전히 매수청구권 가격 아래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매수청구권으로 지출해야 할 돈이 삼성중공업의 경우 1조 원을 훨씬 넘을 수도 있고,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9000억 원 가까운 돈을 지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양사가 주가를 부양해 매수청구권 가격에 근접시킨다고 해도 당장 확실한 재료가 없다면 오히려 주주들의 매도심리를 자극해 다시 주가가 밀릴 수 있다. 그렇다고 회사 측 외에 주가 매수세가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다리면 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아무리 봐도 치밀한 삼성답지 않는 결정”이라며 “매수청구권 규모가 커졌는데도 합병을 강행한다면 이 때문에 다시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고, 그럼 합병을 철회하지 않은 이사진 등 경영진도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합병회사(삼성중공업) 매수청구권 기준금액 9500억 원(지분율 15.1%), 피합병회사(삼성엔지니어링) 매수청구권 기준금액 4100억 원(지분율 16.0%)을 초과할 경우, 합병의 일방 당사회사는 본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