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재계를 향해 강도 높게 투자를 주문했다. 왼쪽 위는 여의도 증권가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박 대통령은 30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4 외국인 투자주간’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도 “현재 한국은 IT와 자동차 등의 세계적 기업과 세계 6위의 부품소재 생산 기반을 보유한 나라로 성장했다”며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한국의 노력과 저력을 믿고 한국에 투자하고, 한국 기업을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로 삼는다면 여러분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에서 지난해(7위)보다 두 계단 올랐다. 2007년 30위에서 2008년 23위, 2010년 16위, 2012년 7위 등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왔다. 1위는 싱가포르였고 이어 뉴질랜드, 홍콩, 덴마크 순이다. 이 조사는 기업환경을 창업~퇴출에 이르는 10개 부문으로 구분, 특정 시나리오를 부여해 법령분석, 설문조사 등을 통해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GNI) 10배 규모의 자본금으로 그 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에 창업했을 때 기업을 경영하기에 얼마나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는가를 각 부문별로 평가한다.
한국은 창업(지난해 34위→올해 17위), 건축인허가(18→12), 전기공급(2→1), 소액투자자보호(52→21), 퇴출(15→5)에서 상승했다. 반면 세금납부(25), 통관행정(3)은 지난해와 순위가 같고 재산권 등록(75→79), 자금조달(13→36), 법적분쟁 해결(2→4)은 순위가 떨어졌다.
세계은행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국의 조세정책은 가업승계 지원을 위한 상속세감면범위 확대,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법인세·소득세 인하 등이다. 결국 기업환경평가 순위가 높게 나온 것은 규제완화 덕분이란 게 정부의 시각이다. 세계은행은 규제 수준을 창업비용·시간, 건축 인허가 비용, 실효세율 등을 수치화해 평가하기 때문에 법령을 개정하면 순위에 바로 반영된다.
세계은행은 기업환경평가 중 ‘세금납부’ 항목에 대한 사례분석에서 “한국이 법인세율 및 소득세율 인하,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 법인세 감면 등의 적극적인 조세정책으로 금융위기 전후 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기업들이 규제완화의 수혜를 입으면서도 사내에 유보금만 쌓아두고 있느냐는 반 기업적 국민정서가 일어날 만한 상황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10대그룹의 올해 1분기 말 사내유보금은 515조 9000억 원으로 5년 만에 90.3% 증가했다. 삼성그룹은 2009년 86조 9000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82조 4000억 원으로 증가액이 가장 컸다. 현대차그룹의 사내유보금은 41조 2000억 원에서 113조 9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세계은행의 평가 목표가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업환경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기 때문에, 선진국에선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기 공급에 높은 배점을 주는 측면이 있다”고 두둔했다. 세계은행의 조사는 IMD(국제경영개발원), WEF(세계경제포럼)와 같은 국가경쟁력 평가기관들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올해 각각 26위로 평가한 것과도 차이가 난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세계 3위로 평가된 홍콩에선 행정장관 입후보자 자격 제한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도심 점거 운동이 오래됐는데, 세계은행은 이런 게 기업 환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면서 “한국 정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의 기업환경을 평가하는 척도로 부적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국제경영원이 최근 기업 CEO(최고경영자) 및 임원 1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인이 바라보는 2015년도 경영환경 전망’에선 경영계획 방향을 ‘현상유지(50.4%)’로 설정하겠다는 의견을 절반 넘게 내보였다. 국내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대내요인으로는 ‘신성장동력 부재(39.2%)’를 가장 많이 꼽으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 기업경영의 최대 애로요인으로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인한 ‘내수 부진(53.6%)’을 우려했고,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최우선 경제정책 과제로 ‘규제완화(29.6%)’를 꼽았다. ‘철지난 유행가’를 듣는 듯한 답변들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들 스스로 신규사업 투자 등 적극적인 경영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신성장 산업의 경우 당장 돈이 안 되고 계속해서 투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기업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이익을 쫓다 보니 미래에 대한 대비가 소홀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