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 땐 투자금 나올 땐 눈먼 돈
이런 점을 악용해 일부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현지 법인을 세워놓고 비자금을 조성한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서도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운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조세피난처는 ‘누구나 알지만 쉬쉬하는’ 기업들의 은신처인 셈이다. 조세피난처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봤다.
현재 전 세계에는 30여 개국의 조세피난처가 있으며 주로 카리브해 연안과 중남미에 집중되어 있다. 연철호 씨가 법인을 세운 버진 아일랜드는 조세 피난처로서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다. 스위스도 유명하지만 버진 아일랜드 등이 인지도가 떨어져 선수(?)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조세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사실 ‘버진 아일랜드’는 낯설지만 전혀 생소한 곳은 아니다. 바로 지난 2007년 대선기간 내내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BBK사건으로 이미 조명을 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BBK 사건의 주범인 김경준 씨는 지난 1999년 4월에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하고, 2000년 2월에 이명박 당선자가 만든 LKe뱅크에 공동대표로 참여한 바 있다.
BBK는 2000년 중·후반부터 조세회피 지역인 버진 아일랜드에 역외 펀드를 만들어 투자를 유치한 뒤 복잡한 자금거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 씨가 대주주였던 (주)다스도 190억 원을 투자했다.
당시 수사에서 민주당 측은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BBK 현지 법인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BBK의 지분 100%를 김경준 씨가 소유했기 때문에 LKe 뱅크의 투자 여부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 검찰은 박 회장이 연 씨의 버진 아일랜드 법인으로 보냈다는 500만 달러의 용처를 낱낱이 수사하고 있다. 지난 2003년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때도 버진 아일랜드가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당시 자금을 세탁했던 인물로 알려진 김 아무개 씨는 2002년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외국계 투자업체로부터 서울 강남의 빌딩 2채를 300억 원에 매입한 바 있다.
버진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국내에 지사를 둔 이 외국계 투자업체는 거래를 마친 뒤 열흘 후 국내 영업소를 폐쇄하고 같은 해 9월 청산절차를 밟았다. 게다가 이 회사의 한국 영업소 전 대표가 김 씨의 둘째 형인 것으로 드러났다.결국 김 씨는 허위 부동산매매를 통해 그 돈을 조세피난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로 보내 자금세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수사기관에서도 이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자금추적을 했으나 버진 아일랜드의 비협조로 끝내 돈을 찾지 못했다. 버진 아일랜드 이외에도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는 아시아에서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이 유명하며, 카리브해 연안의 버뮤다, 케이먼, 바하마, 파나마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유럽에는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안도라, 모나코 등이 유명하다. 이러한 조세피난처는 세제상의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회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음은 물론, 모든 금융거래에서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와 자금세탁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의 온상이 되고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법인을 설립하기도 쉽고 세금이나 규제가 적기 때문에 기업 활동의 천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조세피난처는 국제 금융거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국세청이나 관세청 등 국내 세정 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최대 1610조 원 상당의 세계 각국 자금이 이들 조세피난처에 몰려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 법인을 세웠다고 해서 모두 불법적인 ‘조세피난’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국세청이나 관세청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조세피난처로 돈을 투자한 기업들에 대해 과세를 하면 기업들이 투자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불복, 소송을 한다는 것. 소송이 붙으면 대부분 국세청이 이기긴 하지만 치밀하게 돈을 빼돌린 경우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승소율이 높은 것은 국세청이 자신있는 경우에 한해 과세를 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국세청 조사국 국제조사과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벌인 역외탈세자 기획조사에서, 조세피난처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외에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의 수법으로 탈세를 한 45명을 적발했다.
국내 법인이 국외 현지법인과 거래를 하며 조세피난처에 세운 서류상 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사주와 관련된 사람의 국외 계좌로 관리하거나, 국외 비자금을 조세피난처 등에 은닉하고 이를 외국인 투자 명목으로 국내에 송금하는 등의 수법이 주로 적발됐다.
일례로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이 아무개 씨는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내 법인을 세워 다시 이 돈을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인 A 사에 투자했다. A 사 역시 이 씨가 외국인 명의를 차용하여 설립한 회사. A 사는 향후 자금 추적 등을 피할 목적으로 단기간 조성한 은닉자금을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로 송금한 후 즉시 폐업해 버린다.
기업이 아닌 개인들도 홍콩 등지의 국제변호사를 통하면 수천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조세피난처를 통해 돈세탁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 컴퍼니는 대부분 금융 컨설팅, 기업 M&A, 창업 투자사 등 무형의 수입이 많은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회사도 창업투자사다. 극소수지만 한국 내 미군부대에 있는 은행에 계좌를연 후 유학 중인 자녀에게 돈을 직접 보내는 식으로 자금 세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들 중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거의 1000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국내 대기업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관광국가인 카리브해 쪽에 몰려있다.
실제 사업을 목적으로 법인을 세운 경우도 있지만 은밀한 목적으로 법인을 세운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세정 관계자의 설명이다.카리브해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누군가는 관광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도 열심히 돈을 묻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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