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배우 최진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루머의 발단은 한 증권사 여직원의 메신저였다. 증권가는 발 빠른 정보가 투자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에 메신저의 위력이 크다. 때문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루머가 유포됐던 것. 그만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 메신저다.
공연기획사에 근무하는 K 씨(여·34)는 메신저의 위험성에 대해 늘 경계하던 터라 친구 등록도 몇 명 해두지 않았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친구를 잃었다.
“뮤지컬을 보고나서 좀 울적해지는 바람에 취향이 비슷한 후배한테 메신저로 말을 걸었어요. ‘쓸쓸하고 외로워’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맞장구를 쳐줄 줄 알았던 후배가 크게 걱정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다시 보니 유부남인 초등학교 남자 동창이었죠. 순간 당황해서 급하게 해명을 했지만 그 친구와 불편한 관계가 됐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달콤한 실수담’이 됐다는 J 씨(29)의 일화 한 토막.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현재 같은 마케팅팀의 직장 동료와 사내 연애를 하고 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J 씨는 한 살 연상의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인 데다 왠지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 속으로만 가슴앓이를 해왔던 그는 종종 메신저로 동기에게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날도 한참을 선배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찬양 일색의 이야기를 쏟아놓고 있었는데 늘 타박하던 동기가 답이 없더라고요. ‘듣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잘 들었어요’라고 뜨는 거예요. 대화명을 확인했더니 동기와 이름이 비슷했던 그 선배였죠. 순간 눈앞이 하얘졌어요.”
그 후 ‘사랑의 메신저’로 J 씨의 마음을 알게 된 선배의 태도가 달라졌다. 먼저 밥을 먹자고 해 따로 만났고 서서히 친해지면서 지금의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메신저 단속을 소홀히 해 낭패를 경험한 직장인들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기에 자리를 비울 때 확실한 ‘로그아웃’은 필수다. 조심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솔직한’ 본심을 들킬 수 있다.
사보 기획사에 근무하는 Y 씨(여·31)는 마감 일자에 쫓겨 평소 야근하는 날이 많았다. 메신저는 원고 수정이 바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늘 띄워놓는다. 사건은 마감 날 벌어졌다.
“규모가 좀 큰 기획 원고를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처럼 일찍 퇴근했어요. 약속 때문에 급하게 나왔는데 모니터가 절전모드로 돼 있어서 컴퓨터를 끈 줄 알았죠. 다음날 팀장이 저를 부르시더군요. 대뜸 ‘그동안 불만이 그렇게 많았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식은땀이 확 나더라고요.”
실은 Y 씨가 일찍 퇴근한 날 자료 때문에 그의 책상에 왔던 팀장이 우연히 컴퓨터가 켜진 것을 발견하고 끄려는 순간 모니터에 떠 있는 메신저를 본 것이다. Y 씨는 평소 등록된 친구들을 선호도 순으로 분류해 놓는데 팀장은 ‘깐족 마녀들’ 쪽에 속해 있었다. 그녀는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해명조차 못했다”며 “무조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시간이 지나 잊히기만을 바랐다”고 털어놨다.
증권사에 근무하는 G 씨(32)도 얼마 전 ‘로그아웃’을 잊어 큰일을 치렀다. 인터넷 게임을 좋아하는 그는 가끔 집 근처 PC방에서 팀플레이를 즐긴다. 정보에 민감한 직업이라 게임을 하는 중에도 메신저를 켜 놓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금요일 밤이라 장시간 게임에 몰두했어요. PC방이었기 때문에 게임이 끝나고 으레 그렇듯 게임 사이트 창만 닫고 집에 돌아왔는데 메신저를 모르고 켜놓고 왔던 거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라 늘 조심했는데 그날따라 깜빡했습니다.”
실수의 여파는 월요일 출근 후 돌아왔다. 누군가 그의 메신저를 이용해 손발이 오그라들 만한 장난을 쳤던 것. 등록된 대화 상대 중 무작위로 골라 민망한 사진을 전송했다. 로그인 되어 있지 않은 상대 중 여자에게는 ‘좋아했다’는 쪽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G 씨는 “다행히 사진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착오가 있겠거니 하면서 이해해줬다”며 “그렇지만 고백 쪽지를 받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여 사실을 설명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잘못된 한 번의 ‘클릭’으로 그간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E 씨(여·27)는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실제 성격이랑은 반대지만 회사에 호감 있는 동료도 있고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숭을 떨고 있었던 것. 그러다 대화 상대를 잘못 클릭해 본 모습이 들통 나 버렸다.
“친구와 남자 동료가 똑같이 대화명 앞에 ‘소주병 이모티콘’으로 돼 있었는데 친구를 클릭한다는 것이 동료를 클릭했어요. 거친 비속어를 써가며 상사 흉을 실컷 봤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남자직원이었던 거예요. 그 사람은 처음에는 실수가 아닌 줄 알고 대답을 해줬는데 점점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한참 뒤에 자기한테 말 건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는 거 있죠.”
언론사에 근무하는 K 씨(30)의 경우는 한마디로 ‘죽 쒀서 뭐 줬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유통 분야를 담당하던 그는 선배로부터 특종이 될 만한 정보를 받고 은밀히 취재에 들어갔다.
“거의 마무리가 될 시점에 처음 정보를 준 선배한테 원고를 보냈어요. 그런데 마우스를 잘못 눌러서 일 때문에 안면은 트고 있지만 경쟁지나 다름없는 타사 기자한테 파일이 가버렸죠. 특종 앞에선 양심이 안 통하나 봐요. 모른 척하고 기사를 먼저 내더군요.”
메신저는 이제 직장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새로운 소통의 도구가 됐다. 업무상 필요하기도 하고 말로는 어려운 감정을 전달할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하지만 아무리 친숙한 도구라도 작은 실수로 인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할 듯싶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