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씨가 공식적으로 박 대통령 비서실장 역할을 맡을 무렵인 2002년 3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해 정 씨 부부는 역삼동에 100평 규모의 대지를 매입해 원룸을 신축한 뒤 30억 원에 매각했다. 이후 거주지를 현대아파트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해당 아파트 부동산등기부에서 정윤회 씨 부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어딘지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이화여대 법학교수를 지낸 서희원 전 송제교육재단 이사장(2004년 작고)이었다. 서희원 전 이사장은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서재필 박사의 종손. 그의 차남은 서동범 서양네트웍스 대표로 고 최태민 목사의 6녀, 즉 최순실 씨의 바로 아래 여동생인 최순천 씨의 남편이다.
다시 말해 정윤회 씨는 당시 손아랫동서의 부친이 집주인인 아파트로 이사를 간 것이다. 1976년부터 해당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던 서 전 이사장 부부는 지난 2005년 해당 아파트를 이 아무개 씨와 정 아무개 씨에게 팔았다.
그렇다면 정윤회 씨 부부는 언제까지 이곳에 살았던 것일까. 해당 아파트 매매 및 세입자 관리 등을 도맡아 왔다는 인근 부동산업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10년 이상 아파트를 관리하면서 정윤회라는 이름은 듣지 못했다. 뭐하는 분이시냐”고 반문하며 “예전 집주인은 두 분 다 돌아가셨고, 현 집주인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그곳은 2006년부터 전세를 놓기 시작한 곳”이라고 전했다.
정윤회 씨와 전 부인 최순실 씨의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면, 한때 처제와 동서였던 최순천-서동범 부부는 업계에서는 유명인사다. 서재필 박사의 직계 후손인 서동범 서양네트웍스 대표는 유아동복 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연간 매출만 1500억 원에 달한다. 서양네트웍스는 지난해 지분을 홍콩 최대 무역회사인 리앤펑(Li&Fung)그룹에 팔았는데, 인수가액이 2000억 원 내외로 추정된다. 2대 주주로 내려간 서동범 대표가 여전히 경영을 맡고 있다.
부인인 최순천 씨는 가구·외식사업을 주업으로 한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맡고 있다. 에스플러스는 서울 가로수길과 부산 달맞이 고개에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했는데, 최근 세무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진 탤런트 장근석의 아지트로 유명세를 탔다.
정윤회 씨와 서재필 가문의 기이한 인연과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는 “보수 진영에서 재평가에 주력하는 근대사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이고 그 다음이 서재필인데 하여간 신기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 ‘7인회’ 멤버인 안병훈 기파랑 대표가 맡고 있다. 안병훈 이사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이을 후임자로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기파랑은 지난 5월 서재필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아 화보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