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튿날 24일 이른 아침부터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이 마을 입구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서거를 앞두고 며칠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히 집 안에서 홀로 지냈다. 지난 13일 오후 4시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권양숙 여사의 검찰 재소환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딸 정연 씨마저 돈을 받았다는 검찰 발표 등에 대해 논의하려 사저를 방문한 게 외부인과 공식적으로 만난 마지막 흔적이다. 경호원들에 의하면 지인들과 노사모 회원들이 직접 사저를 방문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면담을 거절했다고 한다.
당연히 외출도 없었다. 서거 당시처럼 인적이 드문 이른 새벽에 산행을 하거나 마을을 산책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23일 새벽 산에 오른 것이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으나 이 외출이 너무나 먼 길을 떠나는 외출이 되고 말았다.
가족과 상주 비서관 및 경호원을 제외한 외부인 가운데 가장 최근 고인을 만난 이는 평소 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이재우 진영농협조합장으로 알려졌다. 이 조합장은 서거 3일 전인 5월 20일 오후 6시 30분경 사저로 찾아가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 조합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많이 힘드신 것 같아서 찾아갔는데 정말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얼굴만 봐도 심경을 알 수 있다”면서 “말씀이 거의 없으셨는데 표정도 어둡고 침울해 보여 내심 이상한 마음을 먹을까봐 걱정했는데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말하며 비통해 했다.
불안한 기운은 다른 봉하마을 주민들도 느끼고 있었다. 봉하마을 주민 석 아무개 씨는 “요 며칠 새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내심 불안했었다”고 말한다.
요즘 들어선 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비서관들에 따르면 서거를 앞두고 며칠 동안 하루에 채 한 끼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식욕을 잃었다 한다. 이 조합장 역시 “최근 들어 음식을 많이 안 드셨는데 내가 갈 때 사간 통닭도 거의 드시지 않았다”면서 “나올 때 밥 잘 드시라고 말했는데 말씀이 없으셨다”고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참외 한 조각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조합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하루 전인 금요일에 참외,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사저로 보냈다. 평소 참외를 무척 좋아했던 노 전 대통령은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참외는 좀 먹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건강도 극도로 악화됐다. 유서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글귀가 나오는데 최근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 병원 입원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서거 1주일 전 비서관들을 통해 부산대병원 입원을 추진했던 사실이 알려진 것. 노 전 대통령 측은 비서관들이 입원을 권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독서를 많이 하고 글도 자주 쓰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외부 접촉을 중단하고 칩거가 시작된 뒤에는 독서와 글쓰기도 중단됐다. 이런 까닭에 유서에도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는 글이 적혀 있다. 게다가 말수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결국 집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지난 며칠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매스컴의 취재 경쟁이 불거져 화단이나 마당에서 산책하는 모습은 물론 실내에서 움직이는 모습까지 사진이나 화면으로 찍혀 보도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올린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에서 “가끔 보고 싶은 사자바위 위에서 카메라가 지키고 있으니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조차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후 취재진이 대거 철수하면서 사자바위를 비롯한 사저 뒤편 봉화산 산봉우리를 쳐다보는 데에는 불편함이 덜어졌다. 독서, 글쓰기, 대화 등 평소 즐기던 일들이 모두 중단됐고 식사, 수면, 외출 등 인간으로서 필수적인 사안들까지 정상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일한 낙은 사저에서 창밖 봉화산을 바라보는 정도였을 것이다.
항간에선 어둠이 깊은 새벽녘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창밖 봉화산을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평소 사저에서 사용하던 컴퓨터에 유서를 남겼다. 한글 파일로 22일 새벽 5시 21분에 최종 저장됐는데 문서 제목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였다. 유서의 두 번째 문장이 약간 변형된 것으로 제목에 담긴 문장이 유서 초안의 첫 문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글파일의 경우 별도의 제목을 기록하지 않으면 첫 문장이 제목으로 저장된다. 초고를 작성한 뒤 파일명을 달지 않고 저장해 첫 문장이 제목이 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 이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라는 첫 문장을 추가하고 두 번째 문장 역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라고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자살을 결심하고 고심해서 남긴 ‘유서’라기보다는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한 뒤 당시 심경과 가족들에게 하고픈 말을 짧게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검찰 수사로 심적 고통을 받아온 노 전 대통령이 부인인 권 여사의 두 번째 검찰 소환이 이뤄지는 날 새벽에 자살을 결심했다는 부분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심한 고통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측근 인사들과 가족들까지 자신으로 인해 고통에 빠지게 된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 이런 탓에 제목이 된 본래 첫 문장 역시 고인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외출’은 23일 새벽 5시 45분쯤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이 인터폰으로 경호원들에게 산책 나간다는 사실을 알린 것. 5시 50분쯤 사저 입구에서 경호원을 만난 노 전 대통령은 봉화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30분가량 등반해 6시 20분쯤 두 사람은 봉화산 능선 부엉이 바위에 도착해 약 20분간 휴식을 취했다. 이 아무개 경호원은 경찰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사느냐” “담배 있나?” 등의 질문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 경호원과의 대화에는 언론의 취재 열기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한 사람이 바위 아래 폐쇄된 등산로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 경호원에게 “폐쇄된 등산로에도 사람이 다니네. 누구지? 기자인가?”라고 얘기한 것. 매스컴의 취재 열기로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마저 누리지 못한다는 글까지 남긴 바 있는 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에도 기자에 대한 경계심, 또는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이 경호관은 “가끔 사람들이 다니는 모양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시선을 돌린 사이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 정상에서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
이 때가 오전 6시 45분.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추락에 의한 외상성 중증 뇌손상(뇌좌상, 뇌부종, 두개골 골절)으로 오전 9시 30분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서거했다.
김해 봉하마을=특별취재팀
(신민섭 박혁진 김장환 이윤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