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여자 연예인에게 받은 각서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제껏 연예인들이 ‘노예계약’으로 힘겨워 한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노예각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경찰 수사 결과 실제로 이 연예인은 노예나 다름없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피해 연예인은 문제의 각서를 쓴 여자 연예인 한 명이 아니었다. 구속된 연예기획사 대표 김 아무개 씨는 불법 전속계약, 감금, 성폭행, 성행위 비디오 촬영 강요, 협박, 사기 등의 다양한 혐의를 받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속 연예인들의 몫이 됐다. 뿐만 아니라 김 씨는 직접 단란주점까지 운영했는데 이곳에서 소속 연예인들에게 술 접대를 강요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6월 26일 소속사 연예인들에게 ‘노예계약’을 강요하고 상습적인 성폭행 행각을 벌인 혐의로 A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 아무개 씨(47)를 구속했다. 불법 전속계약, 감금, 성폭행, 성행위 비디오 촬영 강요, 협박, 사기 등등.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밝힌 김 씨의 혐의는 마치 ‘연예계 악습과 폐해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하다.
우선 신인 여자 연예인과 체결한 전속계약부터 문제가 있다. 전속계약 7년은 별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계약 기간 내에 다섯 장의 앨범을 내지 못하면 계약 기간이 무한 연장되는 단서가 붙었다. 소속사 측에서 마음만 먹으면 평생 해당 연예인을 묶어둘 수 있어 노비문서나 다름 없었던 것. 게다가 계약 기간 내내 정해진 숙소에서 홀로 생활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을 숙소로 정해 소속사 직원이 24시간 감시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행 및 성행위 동영상 촬영도 강요했다. “믿고 투자하려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것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여자 연예인의 성행위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 소속 남자 연예인도 예외는 아니다. 하의를 벗고 자위행위를 하도록 한 뒤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해온 것.
대개 성행위 동영상을 촬영해 보관하면 이를 악용한 협박이 이어지곤 한다. 김 씨 역시 소속 연예인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 “말을 듣지 않으면 언론사나 부모들에게 유포해 매장시키겠다”는 협박 문자를 보내는 파렴치한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PR(홍보)비 명목으로 사기를 친 사례도 있다. 한 연예인과 ‘한 달간 총 17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홍보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어 PR비 명목으로 5000만 원을 받은 뒤 이를 가로챘다는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것.
벌써부터 이번 사건이 ‘제2의 장자연 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연예관계자들은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장자연 자살 사건의 경우 소속사 대표인 김성훈 씨가 워낙 연예계 유명 인사인 데다 오랜 기간 다수의 톱스타들의 매니지먼트를 맡아왔다. 결국 연예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는 얘기. 반면 이번에 구속된 김 씨는 연예계 변방에 있는 인물이다.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연예인 가운데 톱스타로 볼만한 연예인이 전혀 없는 데다 연예인으로 이름이나마 알려진 이들도 거의 없다. 연예관계자들 역시 김 씨와 그가 운영하는 연예기획사를 잘 알지 못할 정도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 역시 연예계의 음지에서 비정상적인 연예기획사를 차려두고 벌인 사건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김 씨가 단란주점을 운영했다는 부분이 예상외로 커다란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 연예계에선 일부 연예기획사 대표나 방송국 PD 등의 관계자들이 타인 명의로 유흥업소(룸살롱, 단란주점 등)를 차려놓고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곤 했다. 그곳에서 여자 연예인들에게 술 접대를 하도록 강요하곤 했다는 부분이 소문의 요지다.
고 장자연 사건의 경우 소속사 대표 김 씨는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를 운영하진 않았지만 대신 소속사 건물 1층에 와인 바를 운영했다. 와인 바의 경우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처럼 별도의 룸은 없어 술 접대가 이뤄졌다 할지라도 깔끔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같은 건물 3층에 최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호화 스위트룸을 마련해 놓았다. 1층 바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가진 뒤 3층 스위트룸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술자리를 갖곤 했던 것.
이번에 구속된 김 씨 역시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에도 이런 혐의를 포착했다는 부분이 나오지만 술 접대 일시 등 구체적인 사항은 기재돼 있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김 씨의 혐의에 술 접대 강요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지만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방송 관계자 등에게 술 접대를 한 것이라면 이번 사건이 또 다른 PR비 파동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
김 씨는 본래 호텔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던 인물로 2003년 나이트클럽 운영을 중단한 뒤 2004년에 A 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그런데 A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자는 김 씨가 아닌 윤 아무개 씨로 돼있다. 또한 윤 씨는 2007년부터 서울 강남 지역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해왔다. 김 씨와 윤 씨는 거주지가 일치하는 것으로 볼 때 부부 사이로 보인다.
문제의 단란주점은 지하 1층에 있다. 중앙에 홀이 있고 룸이 몇 개 딸려 있다. 단란주점인 만큼 중앙 홀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설이 설치돼 있는데 현재는 라이브 바로 운영 중이다. 해당 업소에서 만난 현 운영자는 “지난 4월부터 내가 이 업소를 운영하고 있어 이전 업주가 여기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는 전혀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자신은 윤 씨나 김 씨하고는 무관한 사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수사력 역시 또 다른 피해 연예인을 찾는 부분과 술 접대를 받은 인사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경찰 수사 과정에서 술 접대 강요와 관련해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면 접대를 받은 인사들도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이번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6일 오후 “신인 여가수 성폭행 등 피의사건은 피해자 보호가 절대 필요한 사건으로 보도를 자제토록 요청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언론사에 발송했다. 이에 따라 <일요신문>은 피해 연예인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고 구속된 김 씨와 관련자들의 범법 행위 및 이와 관련된 의혹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작성했음을 밝힌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