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상도11지구 재개발사업 사업 과정에서 거액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S 주택 기 아무개 대표(62)를 구속 기소했다. 또 기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지덕사 이 아무개 이사장(73) 등 6명을 구속 기소하고 재개발조합추진위원회 임원 유 아무개 씨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기 씨는 2004년 서울시가 상도11지구(상도4동)에 대해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발표하자 주민들이 진행하는 재개발조합 설립 사업을 무산시키고 민영방식의 주택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목적으로 2006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관계자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였다. 지덕사는 1960년 조선시대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검찰의 발표와는 달리 이번 사건은 이미 1996년부터 ‘불씨’가 생겼었다. 당시 양녕대군 재단이 빚에 허덕여 재단 소유의 땅이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에 넘어가면서 시작된 것. 이때부터 개발권을 둘러싼 업자와 재단, 주민들 간의 갈등이 벌어졌다.
특히 재단으로부터 사업권을 넘겨받기로 했던 최초 사업자가 IMF사태로 재정난을 겪으면서 사업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 사업자는 재단 이사진은 물론이고 주민들 대부분의 동의까지 얻으면서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해갔다. 하지만 금융위기라는 직격탄을 맞고 결국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재개발 방식은 큰 ‘줄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서울의 노른자 땅이던 상도동 재개발 지역을 시행업자들이 가만놔둘 리 없었다. 이 지역 개발사업은 상도4동 일대 5만여㎡(약 1만 5000평)의 부지에 지상 7~12층짜리 아파트 11개 동을 지어 300억~400억 원의 사업 이익이 예상됐다.
상도동 재개발 사업에는 각종 금융브로커와 개발업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를 틈타 이권을 챙기려던 재단 이사장의 농간으로 사업은 더욱 꼬여갔다. 이 과정에서 이번에 구속된 기 씨가 끼어들었다. S 주택 대표였던 기 씨는 2004년 서울시가 상도11지구에 대해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발표하자 기존 주민들이 진행하는 재개발조합 설립 사업을 무산시키고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 주택사업을 진행시켜 수익을 챙길 목적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우선 기 씨는 상도동 산 65의 52 일대 3만 8250㎡의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소유주인 지덕사에 접근했다. 지덕사의 재산 처분은 이사 8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당시 재단 이사들은 토지가격이 많이 올랐고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S 주택에 매각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기 씨는 먼저 이사장에 접촉해 2005년 5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적정한 선에서 토지매매대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사들을 설득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여섯 차례에 걸쳐 31억 5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기 씨는 지덕사 관계자 3명에게도 4000만~1억 30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재단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해당 관공서의 인가도 필요했다. 검찰에 따르면 기 씨는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내기 위해 재개발추진위원회를 상대로 금품로비를 벌였다. 기 씨는 재개발추진위원장 최 아무개 씨 등 추진위 관계자 5명에게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주는 대가로 한 사람당 적게는 8000만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까지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기 씨의 금품 살포는 여기가 끝나지 않았다. 기 씨는 재개발 관련 용역업체 R 사의 이 아무개 대표와 박 아무개 감사에게 주민 재개발조합 설립을 무산시켜주는 대가로 각각 13억 5000만 원과 10억 원을 건넨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2007년 주민재개발설립 총회장에 난입해 총회를 무산시켰다. 또한 동작구청 박 아무개 과장에게도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지연시켜달라며 2000만 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시행업자인 기 씨는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도 역시 돈을 살포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2007년 5월 K 종합금융 등으로부터 수백 억 원의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시공사인 K 건설 이 아무개 차장에게 “K 건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지급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하며 6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즉 이번 사건은 재개발 사업에 주체인 시행사 대표가 사업 시행을 위해 동의를 얻어야 할 토지소유주, 거주민 대표, 용역업체, 공무원, 금융기관, 시공사 등 모든 구성원에게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뿌린 재개발 비리의 ‘종합세트’였던 것이다.
기 씨는 로비과정에서 들어간 돈을 결국 조합원이나 일반 분양자들이 최종 부담하도록 회계처리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행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문제점이 모두 드러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주민들과 법인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 대표는 ‘얼굴마담’일 뿐이며 이번 사업의 배후에는 시공사인 K 건설이 있고, 이쪽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해준 돈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