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중심행정타운 전망대 개관식. 사진출처=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 ||
기획재정부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과천청사 공무원들 사이에선 이런 애들 말장난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요즘 정부과천청사 공무원들의 핫 이슈가 세종시와 차량 2부제이기 때문이다. 2부제는 당장 출퇴근 불편이, 세종시는 향후 출퇴근은 물론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혹시’와 ‘제발’이 교차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세종시 말장난’의 배경을 따라가 봤다.
세종시는 충남 연기·공주 지역에 조성하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이름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의해 탄생한 신도시다. 대선 중반까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슈였으나 대선 막판 코너에 몰렸던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현 자유선진당 총재)가 행정수도 이전시 수도권 경제공황론을 들고 나오면서 갑자기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엄청난 산고를 겪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을 제정했지만 이듬해인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위헌 판결로 국회 청와대 대법원 헌법재판소와 통일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여성가족부 6개 정부부처만 남기고 나머지 부처를 옮기는 쪽으로 계획이 전면 수정됐다. 이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2005년 3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본격적인 공사는 2007년부터 시작, 2012년 완공하도록 되어있으며 정부부처는 2012년부터 이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행정수도 이전이 물거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번지면서 사업은 표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과 지위, 행정구역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국회에서 지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 없다”고 언급한 뒤 상황이 조금 진척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 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을 세종특별자치시로 결정하고 법적지위는 광역 수준의 지방자치단체로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세종시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동안 벌어져온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과 지위, 행정구역의 법률적 논란은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세종시가 행정중심도시로서 제 역할을 하게 될까? 이를 위해서는 정부부처 이전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것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2005년에 제정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보면 세종시에는 12부 4처 2청의 행정기관이 이전하게 되어 있다. 이전 대상 기관들은 재정경제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과학기술부 농림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노동부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12개 부, 기획예산처 국가보훈처 국정홍보처 법제처 4처, 국세청 소방방재청 2청”이라면서 “그러나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 들어 이들 부처가 통폐합되면서 명칭이 전부 바뀌었다. 이전 대상으로 지정된 재정경제부나 교육부, 산업자원부 등은 이미 없는 부처다. 법대로 해석할 경우 세종시로 이전해야 할 부처가 아닌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직원들끼리 ‘세종시로 옮겨가야 할 것은 재정경제부지 기획재정부가 아니다. 나중에 옮겨가라고 하면 우리는 재정경제부가 아니라고 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면서 “과천에 있으면 차량 2부제 때문에 고생하고 2012년이 되면 세종시로 출퇴근하거나 생홀아비가 돼 고생할 것이라는 걱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전 대상으로 법률에 명시된 부처 중 현재 그 이름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환경부와 노동부 2부와 법제처 국가보훈처 2처, 국세청 소방방재청 2청에 불과하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기획재정부로 통폐합됐고,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합쳐졌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는 지식경제부로,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는 국토해양부로 변신했다. 또 문화관광부는 문화관광체육부로, 농림부는 농수산식품부로,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가족부로 탈바꿈했다. 이전 대상이었던 국정홍보처는 아예 폐지됐다. 따라서 법률에 따른 이전 대상은 12부 4처 2청에서 9부 2처 2청으로 바뀐 상태다.
정부는 이러한 부처 명칭 변경에 맞춰 ‘세종시 이전 기관 변경계획고시’를 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에 따른 부처 명칭 변경은 했으면서도 세종시 이전기관 변경계획고시는 정부 출범 1년 6개월이 다되도록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애초 정부는 7월이 되면 이전기관 변경계획고시를 하겠다고 했지만 7월 중순인 지금까지 이러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과천청사 공무원들이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이전 기관 변경계획고시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세종시로 보내려면 국회도 같이 가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과천청사 공무원들은 국회가 열리면 여의도에 있는 국회까지 오고가는데 많은 시간을 길거리에 내다 버리고 있다.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갈 경우에 이러한 시간낭비가 몇 배나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정부부처의 한 간부는 “국회가 열리면 장관을 따라서 1급들은 물론 국장과 과장들까지 줄줄이 국회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국회 오는 인원을 최소화하라고 하지만 국회에서 쏟아지는 질의에 장관이 응답하려면 담당 공무원들이 국회에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면 국회가 열릴 때마다 세종시에서 여의도까지 모두 올라와야 한다. 시간과 세금 낭비가 이보다 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막으려면 부처 이전을 재검토하거나, 만약 부처가 이전한다면 국회만이라도 함께 세종시로 와야 한다. 이런 문제가 벌어질 것이 뻔한데도 정치인들은 표만 의식해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표만 바라보는 정치인’이라는 이 공무원의 말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닌 듯하다. 행정수도 이전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고 이슈화했던 사람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하지만 이 총재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JP)에 이어 충청권 맹주로 자리 잡으면서 행정도시 이전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기관 이전 고시를 왜 빨리 안 하느냐. 세종시를 결국 안 하겠다는 뜻이냐”고 따졌고, 7일에는 당 대변인 성명을 통해 변경고시 이행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이에 ‘우리 부처는 이전 명단에 없으니 안가도 된다’는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공무원들이 그나마 솔직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