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재단 이사장을 맡은 송정호 전 장관 등이 지난 6일 이명박 대통령 재산 기부를 공식발표했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청계재단 임원 김창대 세일이엔씨 대표, 송정호 전 법무장관,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 | ||
재산 기부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약 1년 7개월 만에 구체적인 기부방안을 발표했는데 기부가 늦어지면서 재산 환원을 의심하는 야당과 네티즌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기부방식을 놓고도 청와대 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재단 이사들 모두가 측근 및 특수 관계인으로 채워져 일각에선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기도 하다. 전 국민의 박수를 받을 일을 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2%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기부 전 과정을 짚어봤다.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대통령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전례를 찾기가 힘들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95년 처음 재산환원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펴낸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통해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를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며 “기업을 떠나면서 이미 그 생각을 굳혔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시절부터 자신의 월급을 모두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등 ‘기부 문화’ 확산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청계’ 재단이 탄생하기까지는 ‘산고’도 적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와 재단설립 추진위원회에서는 그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에 있던 공익재단에 기부를 할 것이냐 아니면 새로 재단을 만들 것이냐는 주장이 막판까지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특히 청와대 일각에서는 한때 ‘아름다운재단’에 재산을 기부하는 방안까지 추진됐었다는 게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소속의 이 인사는 “주로 청와대 참모진 차원에서 아름다운재단에 재산을 기부하자고 주장했으나 위원회 측에서 반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참모진들은 진보 시민운동의 대표주자격인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면 모양새도 좋고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논거로 내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거부감을 나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재산기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또한 아름다운재단의 설립자인 박원순 변호사가 최근 현 정부에 대해 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본인의 월급을 모두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었다.
논란 끝에 기존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을 접고 새로운 재단을 설립해 기부 의미를 극대화하자는 위원회 측의 방안이 채택됐고 그래서 나온 것이 ‘청계’ 재단이다.
▲ 모두 다 MB라인 청계재단 임원진 12명 중 6명의 면면이다. 맨왼쪽 위 사진부터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왕재 서울대 의대 교수, 이재후 김&장 대표변호사, 김도연 울산대 총장, 류우익 서울대 교수,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 | ||
청계 재단은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진이 총 10명이고 2명의 감사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이사장을 맡은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대통령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을 지냈다.
이사진 중에서는 역시 고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이자 친구인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눈에 띈다. 당선자 시절 테니스 모임에 함께 참석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이왕재 서울대 의대 교수도 포함됐다.
이재후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의 경우 평소 대통령이 힘들어 할 때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말벗’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두 명의 말벗으로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 등이 꼽힌다. 이 변호사는 대선 때 대통령의 외곽자문기구였던 ‘국제전략연구원’의 이사장이기도 했다.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정책자문단 출신이다. 문애란 퍼블리시스웰콤 대표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민관공동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권 출범 초기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김도연 울산대 총장은 초대 교과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에 입성했지만 모교에 대한 특별교부금 지원 문제로 중도 하차했다. 류우익 서울대 교수는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브레인으로 초대 대통령실장을 역임하다 촛불사태와 관련해 퇴진했다.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인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도 부동산 투기와 논문표절 의혹으로 두 달 만에 낙마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가 이름을 올린 것도 눈총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재단활동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감사 2명도 환영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의 고향 친구인 김창대 세일이엔씨 대표는 지난 2007년 BBK 특검 때 논란의 핵심에 있던 주식회사 다스의 3대 주주였다. 당시 다스의 1, 2대 주주는 이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정 씨와 대통령의 형인 이상은 씨였다. 다른 한 명의 감사는 주정중 삼정컨설팅 회장으로 15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국세청장을 통해 불법 대선자금을 모은 ‘세풍사건’에 연루돼 실형까지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주 회장은 이 대통령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같은 전력 때문에 재단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엔 부적격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임원진 12명 가운데 11명이 모두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있거나 특수 관계인들이고 나머지 한 명도 ‘흠’이 있는 셈이다. 외부에서 이번 기부를 곱게만 바라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공익재단 관계자는 “임원들 모두가 대통령과 친분 관계에 있는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단이 투명하게 운영될지는 의문”이라며 “최근 들어서 재벌들이 공익재단을 이용해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가까운 측근들이 그런 점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도 이날 “대통령이 늦었지만 약속을 지킨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재단 관계자 면면이 친위 인사들로 구성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며 호가호위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거론된 인사들은 모두 교육, 사회정책 분야에서 전문가”라면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이 학계에서 공직으로 나옴으로써 사회적 논란에 휩싸여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해 왔다”면서 “이런 인간적인 아쉬움에 따른 선택이 오히려 재산기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