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2부는 지난달 30일 무기중개업체인 일광공영(이하 일광)과 이 회사 이 아무개 회장의 집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회사가 수십억 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군사기밀을 누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 수사가 단순히 탈세나 군사기밀누출 혐의에만 국한해서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광이 김대중 정권 당시 급성장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기간 회사 돈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자체 첩보까지 입수한 상황이다. 결국 앞으로 검찰 수사가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인사들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일광공영 압수수색 이면에 숨겨진 검찰 수사의 진짜 방향을 추적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군의 대형 무기도입사업에 관여한 무기중개업체들 3~4곳에 대해 세무조사를 한 바 있다. 당시 세무조사는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조사했던 서울청 조사 4국이 담당했다.
국세청은 공식적으로는 “납세자 비밀유지 원칙에 따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군과 국세청 내부에선 대체로 ‘(세무조사가) 김대중 정부 시절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관련된 의혹을 캐려 했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은 당시 압수한 장부 등을 토대로 분석 작업을 벌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광공영을 지난달 검찰에 탈세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에 넘겨진 자료에는 일광이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거래 실적 중 300억 원가량의 무기중개 수수료를 누락하고 70억 원의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일광이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외형이 30억 원이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최근 들어 각종 학교법인을 인수하고 회장인 이 아무개 씨가 교회 건축에 거금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자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추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뤄진 시기다. 국세청은 한상률 전 청장 재임시절이던 지난해 9월 무기중개업체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뤄진 직후였다. 이때는 국세청 내부에서 전 정권과 연관된 기업 혹은 개인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을 때다. 특히 당시 세무조사 역시 박연차 게이트로 주목받았던 ‘국세청의 중수부’ 서울청 조사 4국이 담당했다. 결국 무기중개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도 전 정권에 대한 표적조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슷한 시기에 군 검찰에도 전 정권 시절의 무기중개와 관련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익명의 진정서가 날아든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DJ 정권 시절 도입했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포함한 군납비리 및 방위산업청의 군사기밀 누설 혐의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역시 군 검찰도 자체 조사 결과를 지난 3월 검찰에 이첩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광은 어떤 회사이며 이 회사의 회장은 어떤 인물이기에 국세청과 군이 눈여겨 봤던 것일까.
일단 이 회사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 급성장했던 회사로만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광은 이 시기에 육군과 해양경찰 등에 헬기나 미사일 등 군수물자를 납품하며 성장했다.
여기에는 당시 정권 실세로 통했던 재미교포 무기중개상 조풍언 씨가 뒤에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국세청이나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에도 이 같은 첩보가 이어졌다. 미국으로 망명한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도 이 회사와 조풍언 씨 그리고 DJ 정권 간의 커넥션 의혹을 망명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제기했다.
일광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DJ 정권 시절 도입했던 차세대 전투기 사업 때문이다. 당시 일광은 프랑스 다소사(社) 라팔 전투기의 국내 에이전트로 선정 업무를 대행했다. 비록 미국 보잉사의 F-15K에 밀려 차세대 전투기 선정에서 떨어졌지만 DJ정부 실세로 통했던 A, B 의원 등에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가 일부 진행됐으나 현역 대령만 구속된 채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에 대해 ‘몸통은 내버려둔 채 꼬리 자르기 수사를 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이 회사를 파악하는 또 하나의 단초는 회장 이 아무개 씨다. 이 회장은 경찰 경사 출신으로 중견 기업인 일광공영 회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이었던 그가 어떻게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무기중개상으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것만은 분명하다. 혈혈단신 뛰어든 무기중개업계에서 이 회장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조 씨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조 씨는 린다 김과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무기중개상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미국에서 조 씨와 오랫동안 알고지내 조 씨 집안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한 재미교포는 “조 씨가 이 회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각종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의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도 “조 씨가 이 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대전차 유도미사일사업이나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조 씨와의 연결고리는 뚜렷하게 드러난 바 없으나 어쨌든 이 회장은 무기중개업을 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으며 이후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에 거액의 건축헌금을 내고 학교법인을 인수해 장학사업을 하는 등 적지 않은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 회장의 이러한 활동이 지난 몇 년간 신고된 일광의 외형으로는 할 수 없는 규모로 보고, 돈의 출처를 찾기 위해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일각의 주장처럼 만약 이 회장이 조 씨의 대리인이었다면 정권 실세와 친분이 있던 조 씨를 통해 일광의 돈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에 흘러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소득신고 당시 누락된 300억 원이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 돈의 최종 종착점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상황에 따라서 이번 압수수색이 또 다른 권력형 게이트로 발전할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게 검찰 주변의 예측이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탈세나 군사 기밀 누출 혐의 등에 대해서만 수사하고 있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돈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또 다른 ‘대어’가 나온다면 그것마저 덮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상황에 따라서는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쳤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검찰 총장이 교체되는 시점에서 함부로 정치적 오해를 받을 만한 수사를 하겠냐”며 “고발건에 대해서만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연차 게이트는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로부터 촉발됐고 검찰 고발이 이어지면서 메가톤급 폭탄으로 발전해갔다. 현재까지 일광공영에 대한 수사도 태광실업의 그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광공영과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 지 또 그 파급효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에 정치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