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웅섭 신임 금감원장(왼쪽)은 곧 후속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취임했던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1년 8개월 만에 물러났다. 정부와 금감원 모두 “경질이 아니다”라고 강변하지만 금융권에서 이 말을 액면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후임으로 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취임했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비주류 출신에다 역대 최연소인 진웅섭 원장이 취임함에 따라 대대적인 인사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임 최수현 원장이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던 각종 금융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실상 경질된 성격이 짙다는 점도 인적쇄신을 점치게 하는 대목이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1959년생으로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 게다가 고위공직자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상고와 검정고시 출신이다. 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포항 동지상고를 다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자퇴한 뒤 대입 검정고시를 치렀다. 이후 곧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7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건국대학교 법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4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관료 생활로 공직에 돌아왔다.
‘명문고-명문대-고시합격’으로 이어지는 소위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있는 이력 때문인지 그는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의 주류세력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진 원장의 남다른 경력은 그가 금감원 수장이 되자 인사개혁 바람의 ‘진원지’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이 쏠리는 대상은 부원장들이다. 부원장은 진 원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게 될 참모진이자 은행과 증권, 보험, 신용카드 등 각 부문을 총괄하는 책임자들이다. 따라서 진 원장이 새 술을 담기 위해 새 부대를 짤 가능성이 높다.
우선 최종구 수석부원장이 지난 2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최 수석부원장은 총괄부원장이자 보험감독을 지휘해온, 명실상부한 금감원의 ‘넘버2’였다. 최 부원장은 행시 25회로 세 기수 후배인 진 원장을 상관으로 모시게 됐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 듯하다. 후배가 선배 기수를 앞질러 승진할 경우 선임자들은 옷을 벗는 것이 관례다. 게다가 최 수석부원장은 최수현 전 원장이 발탁한 인사다. 기획재정부에 근무 중이던 그는 지난해 4월 최수현 원장이 부임한 뒤 금감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 수석부원장엔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출신이 거론되고 있다. 진 원장이 관료 출신인 데다, 최수현 전 원장 시절 금감원과 금융위가 엇박자를 내는 장면이 종종 연출됐다는 점에서 두 기구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인물이 기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금융권 전반에 불고 있는 ‘관피아 낙하산 퇴출 바람’을 감안해 내부 승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있다. 이 경우 박영준, 조영제 두 부원장 가운데 한명이 바통을 이어받게 되는데, 이 또한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진 원장보다 나이가 많다. 은행과 비은행(제2금융권)을 맡고 있는 조영제 부원장의 경우 1957년생으로 진 원장보다 두 살 위다. 한국은행 출신으로 지난 1998년부터 금감원에 몸담아온 조 부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은행 전문가다.
이에 따라 진 원장이 임원진 일괄사표를 받은 뒤 재신임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부원장들뿐 아니라 부원장보까지 포함한 임원 전체를 상대로 사표를 받고, 인사와 조직개편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경우 인사폭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부원장 3명과 8명의 부원장보, 여기에 부원장보급인 금융소비자보호처장까지 포함하면 임원급 인사만 12명에 달한다.
이들이 일부 교체될 경우 자연스럽게 국·실장급과 팀장급 교체 등으로 연쇄 인사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진웅섭 원장은 인사 폭과 시기에 관해서는 밝히기를 꺼린다. 다만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진 원장은 금융위의 청와대 임명 제청이 있은 뒤 “구체적인 계획은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인사는 조만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취임 일성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금감원 직원들이 적극적이면서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인사·보상 체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금감원의 상위기구인 금융위는 적막속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금융위는 최수현 원장과 함께 경질설이 일던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유임되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만간 국장급(2급) 인사가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직제상 국장은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처장 바로 아래인 고위직이다. 위원장 직속인 대변인도 국장급이 맡을 정도로 높은 자리로, 공직생활 경력이 20년 이상인 관료들이 대부분이다. 요직인 만큼 경쟁도 치열한데, 최근 인사적체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금융위에서는 올해 3월 일부 국장이 고위공무원 연수에 들어가거나 외부 기관 파견을 나갔는데, 이들이 올해 말 금융위로 복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줄 자리가 마땅찮다는 것. 금융위 국장급 인사는 해마다 무보직 국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최근 금융위 대변인에 언론인 출신 육동인 국장이 선임되면서 그나마 한 자리가 줄어드는 바람에 인사적체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일부 국장급이 또 무보직으로 남거나 아예 옷을 벗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연말께, 늦어도 내년 초에는 새로운 진용을 갖추게 될 예정이다. 각종 사건사고로 위상이 추락한 금융당국이 달라진 면모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