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청와대 관계자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근황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단지 근황을 물었을 뿐인데도 상대방은 김 실장 사퇴설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의 말은 ‘더 이상 소모적인 문답은 하지 말자’고 못을 박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전하는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실장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21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과 출입기자들의 문답 때에도 그런 상황이 연출됐다고 한다. 민 대변인은 기자들이 질문하기도 전에 “이근면 신임 인사혁신처장이 어제 청와대에서 정무수석, 경제수석 등과 상견례를 겸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고 얘기를 꺼냈다.
일부 조간신문에 전날 김기춘 실장이 이근면 처장을 1시간 넘게 만났다고 보도된 것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런데도 민 대변인은 김 실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조윤선 정무수석과 안종범 경제수석을 들먹인 것이다. 한 기자가 “다른 사람도 이근면 처장과 식사를 했느냐”고 질문하자 민 대변인은 “정무수석과 경제수석은 확인했는데, 비서실장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비켜갔다.
청와대 인사들이 김 실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안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밖에서는 김 실장이 금방이라도 물러날 것처럼 얘기가 오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김기춘 실장이 이근면 처장을 불러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김 실장이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냐”고 되물으며 “김 실장은 예전처럼 지금도 정무, 민정, 인사 등과 관련된 참모들로부터 자주 보고를 받으면서 모든 현안을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청와대 인사들은 더 나아가 김 실장이 앞으로도 계속 비서실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소위 어공(어쩌다 공무원) 출신의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이 부임하기 이전의 청와대를 돌이켜 보면 답은 분명하다. 현재로서는 김 실장 없는 청와대는 상상할 수 없다”며 “국정 성과를 내야 하는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런 점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많은 청와대 관계자들이 이처럼 김 실장의 유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는 김 실장 교체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실장이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77세가 되는 데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등 정치 일정들을 감안하면 지금이야말로 김 실장을 교체할 수 있는 적기라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번에도 김 실장을 교체하지 못한다면 임기 말로 갈수록 교체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고령의 나이와 불운한 가정사 등을 감안해서라도 더 이상 김 실장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지난해 8월 부임 후 김 실장이 청와대 조직의 안정에 크게 기여한 만큼 그를 교체하더라도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