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스타일> | ||
여성상사 입장에서도 잘 따르지 않는 부하직원 때문에 할 말이 많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어도 남성 부하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치르는 곤욕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출판 계통에서 일하는 K 씨(31)는 같은 팀의 여성상사가 눈엣가시다. 서른 후반의 나이에 그 자리까지 오른 것은 인정하지만 일하는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든 여성상사가 그렇진 않겠지만 유난히 ‘여성’이라는 점을 백분 활용하는 것 같아요. 회식자리에서는 부장 옆에만 딱 붙어서 비위를 맞춰요. 솔직히 일할 때 내놓는 결과물을 보면 다들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니 부장도 차마 드러내고 야단을 못 치죠.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협력업체에도 그 넉살을 이용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예요. 상대 담당 직원한테 대놓고 요구하는 걸 보면 부끄럽습니다. 나중에 그 업체에 들렀을 때 ‘그 분 같은 데 있지?’라고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묻는데, 참 할 말 없더군요.”
일을 너무 잘해도 부하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L 씨(32)는 너무 완벽한 여성상사를 만나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있다.
“제가 지금 대리급인데 그분은 과장님입니다. 남녀를 통틀어 승진이 좀 빠른 셈이죠. 그만큼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있어요. 그런데 밑에서 일하다 보면 아, 그럴 만하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꼼꼼한지 같은 자료를 수십 번 검토하고 뭐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긋나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같은 팀에서 일하다보니 좀 피곤한 것도 많죠. 실수하면 봐주는 것도 없고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고요. 일적인 면에서는 배울 것도 많지만 상사가 아닌 군기반장 같은 모습 때문에 가까운 사이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의류회사의 M 씨(32) 역시 까다로운 여성상사와 일하기가 영 불편하다고 토로한다. 여성이라서가 아니고 ‘그 사람’이라서 껄끄러운 것일 수 있지만 아무래도 편견을 버릴 수가 없다.
“그 분 나이가 올해 마흔인데 핵심부서장입니다. 그만한 직급이면 파워 있죠. 하지만 한심해 보일 때도 많아요. 패션 감각은 알아주지만 그만큼 유지하는데 만만치 않은 돈이 들죠. ‘나이 마흔에 직급도 높은데 모아놓은 돈이 없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할 때는 좀 철없다 싶더라고요. 기본적인 품위유지비에 매일 택시만 타고 다니는데 돈 모으기 쉽지 않았겠죠. 채식주의자라 어디 가서 밥 한 끼 먹으려고 해도 늘 걸림돌이고요. 사람은 착한데 같이 일하기는 영 불편해요. 일을 잘해도 맞추기 힘든 사람이라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닙니다.”
부하직원보다 나이가 어린 여성 상사는 원만한 직장생활의 최대 난제 중 하나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해야 하지만 나이도 어리고 더구나 ‘여성’이라는 편견 때문에 상사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상사 입장에서도 나이와 성별로 인한 차별을 겪을까 싶어 먼저 공격적으로 부하직원을 대하는 경우가 있다.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J 씨(32)는 대학을 늦게 간 데다 졸업도 늦어 늦깎이 신입으로 입사한 지 1년 남짓이다. 그는 요즘 자신보다 세 살 어린 여성상사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가 많다.
친구들은 “여자인 데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 때문에 무시당할까봐 미리 선수 치는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J 씨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니 회사를 떠날까도 심각하게 고민해 봤지만 어느 회사나 이런 문제는 있을 것이란 생각에 참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면 조용히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회식만 가면 괴로운 부하직원도 있다. 화장품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Y 씨(28)는 즐거워야 할 회식자리가 늘 곤욕이다.
“회사 특성상 여직원도 많고 자연스럽게 여성상사도 많죠. 일할 때는 어차피 일이니까 넘어가는데 회식만 가면 왜 자꾸 러브샷을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나이도 어리고 결혼 전이라 좋은 놀림감이라는 건 알겠는데 때로는 좀 지나치다 싶은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요. 일반 회사 내에서 여성 성희롱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남자 입장에서 제가 직접 겪으니 그 심정 이해가 가더군요.”
일반적으로 여성상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부하직원들에게 술자리 안주감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모시기 힘들다는 게 남성 부하직원들의 의견이다. 꼭 진솔한 시간을 술자리에서만 가지라는 법은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술자리를 통해 서로의 불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짬짬이 담배와 함께 커피타임을 가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오해를 살까 싶어 고민이 있어도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여성상사들과는 이 모든 것을 함께 하지 못해 관계가 늘 어렵고 불편하다는 것이 ‘특별한 분’을 모신 남성들의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원만한 회사생활의 기본은 원활한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남성 상사들에게만 통하는 방법으로 여성상사와의 불화를 잠재우려고 하기보다 여성의 관계지향적 특성을 고려해 상사의 취향에 맞춰 작은 선물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선물보다 앞서야 할 것은 물론 상사에 대한 ‘존중’과 여성에 대한 편견 깨기일 것이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