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딴소리에 울고 웃고
과천 정부청사 공무원들이 최근까지 가장 골치아파했던 문제는 차량 2부제와 세종시였다. 차량 2부제는 시행 1년여 만에 선택요일제(차량 5부제)로 바뀌면서 골칫거리 명단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세종시는 여전히 골칫거리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국회와 청와대,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주요기관과 통일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여성가족부 6개 정부부처를 제외한 12부4처2청이 2012년까지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그동안 공무원들 사이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정부가 부처 통폐합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정한 이전 대상 부처 명칭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 통폐합에 따라 이전 대상은 현재 9부2처2청으로 바뀌었다. 민주당과 선진당은 “정부가 변경고시를 하지 않는 것은 부처 이전을 하지 않으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지만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테이블에 꺼내놓으려 하지 않아서 공무원들은 속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세종시 수정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 후보자는 내정 직후 “세종시 계획을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복합도시를 세우되 충청 분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수정안으로 갈 것”이라고 밝히면서부터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도 “세종시는 국가 전체로 봐서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 행정부처가 두 군데 떨어져 있어 장·차관 모임 등 여러 가지 모임을 할 때 인력들이 옮겨가는 것도 비효율적이고 서류도 왔다 갔다 해야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세종시 계획 변경을 분명히 했다.
과천 청사 공무원들은 정 후보자의 지적으로 그동안 속앓이를 해왔던 세종시에 대한 수정론이 부각되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솔직히 부처를 이리 저리 쪼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지금도 과천에서 보고를 하려고 세종로 청사를 가거나, 국회를 가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면서 “부처를 옮기고 싶다면 국회도 반드시 세종시로 가야 한다. 자신들은 가지 않으려 하면서 충청표를 의식해 부처만 쪼개 보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소를 짓는 부처도 있지만 정 후보자의 발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교육과학기술부다. 정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자족도시를 언급하며 “과학연구기관, 비즈니스 관련기관, 대학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한 탓이다. 이는 정부가 추진 중인 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과 맥이 닿아 있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란 2015년까지 3조 5000억 원을 투입,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설치된 선진국형 과학 중심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며, 이를 위한 특별법안이 지난 2월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세종시가 이렇게 ‘과학도시’로 수정되면 이전 대상은 교육과학기술부 등으로 좁혀지게 된다.
이준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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