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저지에서 발견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묘비. 그 옆자리엔 큰아들 김정한 씨가 묻혀 있다. | ||
김 전 부장은 5·16 군부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의 실세 역할을 하다 권력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려나자 미국으로 망명한 뒤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 정권의 비리를 폭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갑자기 실종된 후 지금까지 그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 살해설, 청와대 사살설 등 그의 실종과 사망을 둘러싼 온갖 추측과 가설만 난무할 뿐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도 ‘김형욱 실종’ 사건을 상세히 조사해 살해됐다고 밝혔지만, 언제 어디서 그리고 배후가 누구인지 등 핵심 의혹들은 규명하지 못했다. 이처럼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김형욱 실종’ 사건이 김 전 부장의 묘지 발견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에서 발견된 김 전 부장의 묘가 진짜인지, 그 묘에 김 전 부장의 시신이나 유해가 묻혀 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김 전 부장의 묘지 발견은 영원히 묻힐 수 있었던 미스터리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잊혀져 가던 ‘김형욱 실종’ 사건 미스터리가 수면위로 재부상한 것은 김 전 부장의 묘지가 발견됐다는 미국의 한 블로그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얼마 전 국내 정·관계 인사 등 사회 저명인사들의 미국내 부동산 거래 내역을 상세히 올려 화제가 됐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가 그것이다.
이 블로그를 운용하고 있는 재미동포 안치용 씨는 9월 21일 “김형욱 씨의 공동묘지는 그의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 집에서 약 2.5마일(약 4㎞) 거리에 있다”며 “묘지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물어봤으나 이 무덤 속에 김형욱 시신의 일부라도 묻혀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블로그에 따르면 묘비에는 ‘KIM’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IN LOVING MEMORY’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 글귀 밑에는 김 전 부장을 의미하는 ‘HYUNG W’와 함께 부인 신영순 씨를 의미하는 ‘YOUNG S SHINE’이 나란히 기록돼 있다.
김 전 부장의 이름 아래에는 태어난 날짜와 함께 그가 실종된 날로 알려진 1979년 10월 7일이 기록돼 있다. 신영순 씨의 경우 현재 생존해 있는 만큼 출생일자만 적혀 있다. 안 씨는 김 전 부장의 묘비로 추정되는 묘비 옆에 큰아들 김정한 씨가 묻혀 있다고 덧붙였다. 안 씨는 블로그에서 김정한 씨는 10대 초반 시절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나갔다가 발목 지뢰로 크게 다쳐 미국으로 보내졌고, 김 전 부장의 실종 때문에 방황을 거듭하다 2002년 9월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 김 전 부장의 생존 당시 모습. | ||
역대 최장기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 전 부장이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되면서 ‘김형욱 실종’ 사건은 그 서막이 올랐다. 서울가정법원은 1991년 3월 “김 씨가 1984년 10월 8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를 내리면서 김 전 부장의 법적 사망이 인정됐다. 하지만 그의 실종과 행방을 둘러싼 구구한 억측과 가설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김 전 부장이 실종된 후 제기된 가설만도 7~8개에 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됐다는 ‘청와대 사살설’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이 집필한 <김형욱 회고록>에서 주장한 ‘차지철의 특수공작팀에 의한 제거설’ △서울로 납치된 김 전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산 채로 자동차에 실려 폐차장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폐차장 압사설’ △제네바에서 살해된 뒤 한국으로 시신이 운반됐다는 ‘오작교 작전설’ △중정 요원이 유인한 뒤 현지 조직폭력배가 살해했다는 ‘프랑스 조폭 살해설’ △프랑스 파리 외곽의 양계장에서 분쇄기로 죽였다는 ‘양계장 살해설’ △파리가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증발했다는 ‘사우디 살해설’ 등이 대표적이다.
▲ 2005년 5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가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중간발표를 하고 있다. | ||
다만 과거사위는 2005년 5월 이 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상열 전 프랑스 주재 공사를 현지에서 김 전 부장 살해를 지시한 장본인으로 지목했을 뿐이다. 당시 과거사위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79년 중정의 프랑스 책임자였던 이 전 공사는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으로부터 김형욱 씨 살해를 지시받았다. 이 전 공사는 도박자금을 빌려달라는 김 씨를 파리 상젤리제 거리로 유인한 뒤 파리에 체류 중이던 중정 어학연수생 2명에게 김 씨를 납치, 살해토록 지시했다. 연수생들로부터 사전에 포섭당한 동유럽인 2명은 파리 근교의 외곽도로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김 씨를 살해한 뒤 낙엽더미 속에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범행 대가로 중정이 전달한 1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전 공사는 과거사위의 면담조사에서 “‘노(No)라고 했다’고 기록해 달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고, 이듬해(2006년) 4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군 출신인 이 전 공사는 1963년 ‘원충연 대령 반혁명 사건’ 처리 과정에서 김 전 부장과 인연을 맺어 중정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얀마 리비아 이란 대사를 역임했고, 김형욱 실종 사건 이후에는 서울 근교에서 숨어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숨지기 직전까지 “정보기관 출신은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며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김형욱 미스터리를 풀어줄 유일한 당사자로 지목돼 온 이 전 공사가 사망하면서 ‘김형욱 실종’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도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 뉴저지에서 김 전 부장의 묘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김 전 부장의 묘지가 30년 묵은 김형욱 미스터리를 풀어줄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