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맞선을 봤던 남성이랑 애프터를 한 K 씨는 조금 불쾌한 경험을 했다.
첫 만남에서 차만 마시고 헤어진 두 사람은 두 번째 만났을 때 식사를 했는데 남성이 계산서를 들고 일어나면서 “이건 제가 낼 테니 찻값 내세요”라는 것이었다.
순간 K 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겨우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이건 누가 내고, 저건 누가 내고’ 하는 계산적인 말을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데다 말 안 해도 알아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마치 자신이 경우도 없는 사람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갖고 계산적인 사람이 다른 건 오죽하겠나 싶으니 더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결국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차를 마시러 간 것이 아니라 각자 집으로 갔다.
♥ 데이트비용 분담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닌 배려의 문제
K 씨의 불쾌함도 이해는 간다. ‘내가 마음에 들면 식사비, 찻값이 대수냐’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K 씨의 이런 해석과는 달리 그 남성은 K 씨가 식사비는 누가 내야 하는지 고민할까봐 자연스럽게 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K 씨가 불쾌했던 것은 남성이 비용을 주로 부담하던 과거의 데이트 문화에 익숙해져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남녀관계에서 데이트 비용 분담 문제는 적지 않은 오해와 갈등의 요소로 등장한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누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하느냐는 곧 자신에 대한 배려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 남성 “왜 나만 내야해?”, 여성 “나한테 쓰는 게 아까워?”
남성의 경우 자신만 계속 지갑을 여는 상황이 되면 상대의 경제사정을 배려하지 않는 여성에게 화가 난다.
하지만 여성이 비용을 내면 얼마 안 되는 돈이더라도 ‘내 부담을 덜어주려는구나’하는 생각에 감격한다.
하지만 여성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다. 여성은 데이트할 때 대접받기를 원한다. 남성이 의자를 밀어주고 차문을 열어주고 먼저 나가서 계산해주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은 자기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니 남성이 카운터에서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나 사주는 게 아까워서 그러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의 차이를 잘 극복하지 않으면 좋은 만남은 힘들다.
♥ 경제적인 여건 감안해서 합리적인 분담의 선을 정해야
30대 초반의 전문직 여성인 L 씨는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한 남성과 몇 번 만났는데, 남성의 경제사정을 배려해서 만날 때마다 거의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성은 L 씨에게 그만 만나자고 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돈 잘 번다고 상대방 기죽이는 게 싫고, 너무 통이 커서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L 씨는 자신의 호의가 이렇게 왜곡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 남녀관계에서 돈과 관련해선 신중하게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을 많이 쓰면 헤프다고 하고 돈을 적게 쓰면 인색하다고 한다. 내가 많이 내면 아깝고 상대가 많이 내면 자존심 상하게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아직까지 우리 문화에서 남녀 간 더치페이는 너무 낯간지럽다. 서로의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해서 합리적인 선을 정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야말로 데이트 비용 분담의 정답이다.
좋은만남 이웅진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