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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순영 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동숭동 D화랑. 청탁을 하려면 먼저 그림을 사야했다고 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는 유상증자를 원하는 업체 대표로부터 금융감독원에 힘을 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정순영 씨(56)를 지난 8월 28일 구속한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는 지난해 11월 자금 사정이 어려워 유상증자를 시도하던 코스닥 상장사 K 사 대표 이 아무개 씨로부터 ‘금감원에 유상증자 승인을 받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정 씨에게 돈을 준 사람이 이 씨뿐만 아니라 수십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정 씨 아내가 운영하는 화랑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정 씨에게 돈을 준 것으로 보이는 인사들의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정순영 리스트’에는 정계는 물론이고 관가나 재계 유력 인사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보안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사들 중 정 씨와 돈 거래를 한 구체적인 증거가 확보될 경우 그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검찰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가을 정국을 뜨겁게 달굴 새로운 화약고로 부상하고 있는 ‘정순영 리스트’의 실체를 들여다 봤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현재 검찰은 정순영 씨에게 돈을 건넨 인사들이 최대 40~5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 인사들의 명단을 지난 8월 정 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동숭동 D화랑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과 연관된 인사들에 따르면 정 씨에게 청탁을 하려 했던 사람들은 정 씨에게 접근하기 위해 일종의 브로커를 매개로 활용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정 씨가 구속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K 사 유상증자 건 같은 경우도 이 회사 대표 이 씨가 직접 정 씨에게 접근했던 게 아니었다. 이 대표는 유상증자를 도와줄 만한 인사들을 물색하다 전직 대검 수사관 L 씨를 소개 받았고, L 씨는 또 다시 D 대학 김 아무개 교수를 이 대표에게 소개해줬다.
결국 이 사건은 ‘이 대표(민원인)-L 전 수사관(소개인)-김 교수(소개인)-정순영’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이 대표는 청탁의 대가로 전직 수사관 L 씨에게 3000만 원, 김 교수에게 6000만 원을 건넸다. 김 교수는 6000만 원 중 3000만 원을 정 씨에게 직접 건넸고, 나머지 3000만 원은 정 씨 아내 화랑에서 그림을 구입했다. 이 대표는 L 씨를 통해 청와대에도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것은 ‘미수’로 그쳤다.
검찰이 D 화랑을 주요 압수수색 장소로 지목한 배경에는 정 씨에게 각종 청탁을 하려했던 사람들에게 화랑이 일종의 창구 역할을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민원인들은 정 씨에게 청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 씨 아내의 화랑에서 그림을 사야 했다. 그림 구입이 일종의 민원용 ‘티켓’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에 그림을 샀지만 정작 그림을 가져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재 검찰이 입수한 리스트는 K 사 유상증자 청탁 ‘매커니즘’과 비슷하게 민원인과 소개인으로 나눠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이 이번 사건에 정통한 인사들로부터 취재한 결과 검찰이 입수한 리스트에는 유력 정·관계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남지역의 A 건설업체 대표는 모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유예와 관련한 건을 청탁하기 위해 전직 경남도 정무부지사 B 씨를 통해 정 씨에게 민원을 넣었다. 여기에는 기술보증기금 전 고위직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지낸 모 대학교 학장 C 씨는 또 다른 전문위원 D 씨로부터 정 씨를 소개받아 민원을 넣었다.
대기업 E 사의 부사장인 F 씨는 공정거래위원회 전 부위원장 G 씨를 통해 정 씨를 만났다. 중소기업 H 사 대표 I씨는 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인 J 씨를 통해 정 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전부터 정 씨를 잘 알고 있는 석유협회 K 간부는 소개인 없이 직접 정 씨를 만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외에도 국정원 직원 L 씨는 정 씨에게 승진과 관련한 민원을 넣어 실제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군 장성 등도 정 씨에게 모종의 민원을 넣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을 통해 제기된 현역 국회의원들은 검찰이 확보한 리스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이 취재한 결과 이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봤을 때 이번 사건이 상당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검찰은 사실 확인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국회 전문위원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정 씨가 개입한 민원들이 한두 건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무총리실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19개를 소관기관으로 두고 있다. 게다가 정무위는 대기업과 관련한 각종 현안들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기업들에게 항상 많은 관심을 받는 그야말로 ‘알짜’ 위원회다. 검찰 수사선상에 기업 인물들이 많이 올라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또 정 씨가 교과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에도 국회의원을 통해 들어온 대학 총장 인사 및 국립병원·연구소 등 간부 임원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위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와 서울대학교병원 등 60개 소관기관이 있다.
현재 검찰은 구속수감 중인 정 씨를 매일 소환해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와의 연관관계 및 자금 추적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고 시간이 지나면 폭발력 있는 뇌관으로 진화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정 씨의 뇌물수수 사건은 전직 대검 수사관 L 씨의 사건에서 갈라져 나온 곁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그 후폭풍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순영 사건은 코스닥 업체 K 사 이 아무개 대표에게서 나온 돈의 행방을 추적하다 정 씨 관련 계좌에서 수상한 돈이 발견되면서부터 확대됐다. 이를 이상히 여긴 검찰은 정 씨 아내의 화랑을 압수수색했고 여기서 리스트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입장에서는 뜻밖의 수확이었고 이때부터 수사는 L 전 수사관 사건과 정순영 사건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정 씨를 구속시킨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L 전 수사관은 이 대표를 비롯한 국군 장성 및 여러 유력 인사들에게 자신의 경력을 허위로 소개하며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이 사건이 정 씨의 사건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검찰은 L 전 수사관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동안 L 전 수사관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손 아무개 씨(여·구속 중)가 모종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고 관련 내용들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손 씨는 L 전 수사관 외에도 여러 명과 내연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각종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화랑과 꽃집을 운영하는 손 씨는 자신이 점찍은 남성에게 장미꽃을 보내 ‘작업’을 알리는 대담함을 보였다고 한다.
정순영 씨 뇌물 수수 사건이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자 관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건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때문에 언론은 물론이고 각종 사설 정보지에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카더라’식 소식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사건에 야권보다는 여권 쪽에 가까운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더는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수사진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수사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봤을 때 보안을 지키는 게 수사의 생명이라고 판단하고 보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과연 검찰발 ‘정순영 태풍’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지고 정·관계를 뒤덮을지 검찰 주변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