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삽화가이자 동화작가인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중에 <돼지책>(Piggybook)이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엄마에게 매일 먹을 것을 해달라는 얘기만 하고 엄마는 집안일에 지쳐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남은 식구들은 엄마가 하던 일을 하면서 엄마의 존재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때론 현실에서도 동화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필자가 아는 한 외국인 부부가 겪은 일이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아내는 세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다. 아내는 명퇴나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그래서 늘 헌신적이다. 남편은 아내가 집안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내를 돕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밤중에 아이가 아파 아내가 밤새 간호를 해야 해도 그는 ‘아이 돌보는 일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잠을 푹 자는 사람이다. 남편의 행동에 아내는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그의 오만에 결국 지치고 말았다.
♥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려서라도 사랑받으라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 달 동안 남편을 위해 하던 일들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식사준비, 세탁, 청소, 약속을 알려주는 것, 매일 챙겨야 하는 일들을 준비해주는 것 등을 남편 스스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죄인가”라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활하면서도 저축까지 할 수 있는 데는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편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녀의 파업은 일주일 만에 끝났다. 며칠 동안 혼자 밥하고 다림질을 하던 남편이 끝내 항복을 한 것이다. 나가서 돈을 버는 일은 대단하고 집에서 내조하는 일은 하찮게 여기던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고 화를 냈지만 점차 아내의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가정이 유지되려면 돈도 중요하지만 집안에서도 많은 일들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
물론 이 부부의 얘기는 흔치 않은 경우다. 그녀의 해결방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 혹은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스스로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당당함은 남녀관계를 더욱 탄력 있게 만들어 준다. 어느 한쪽을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 관계 설정이 아닌,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마음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라도 상대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행여 상대가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자신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적극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멋진 사람인지 상대가 알게 하라. 동시에 상대의 존재도 귀하게 여겨라.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고 여길 때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만남 이웅진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