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효성 비자금’과 관련된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전직 대통령 일가를 비롯한 전·현직 정치인, 전직 고위 관료, 대기업 총수 일가 등 사회지도층 인사 상당수가 미국에 부동산을 보유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효성가 3세들의 해외 부동산 수사를 신호탄으로 검찰의 사정 칼날은 미국 등 해외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국내 거물급 인사들을 겨냥하게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거물급 인사들의 해외 비자금 은닉 의혹과 맞물려 사회지도층 전체를 초긴장 모드로 몰아넣고 있는 검찰발 ‘해외 부동산 수사’ 태풍 속으로 들어가 봤다.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에 휩싸인 검찰이 효성가 3세들의 해외 부동산 취득 의혹에 대해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섰다. 효성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점을 의식해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형국이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아들들이 미국에서 매입한 부동산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5건으로 액수는 무려 100억 원대에 이른다.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과 맞물려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재미블로거 안치용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따르면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주)효성 사장은 지난 2002년 8월 미국 LA에 450만 달러짜리 별장을 매입했다. 조 사장은 2004년 12월엔 콘도 한 채를 180만 달러에 매입했다. 또 2006년 10월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95만 달러를 주고 호화 빌라 두 채의 지분을 매입했다. 조 회장의 3남인 조현상 효성 전무도 2008년 7월 2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약 262만 달러짜리 호화 콘도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효성가 3세들의 해외 부동산 취득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검찰은 효성그룹 일가가 비정상적인 자금을 조성해 해외 부동산을 매입했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10월 19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새로 제기된 미국 주택구입 문제는 공소시효가 살아 있을 수 있다”며 “같은 의혹을 재수사할 수는 없지만 새 혐의가 드러나면 당연히 수사한다”고 말해 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관계자도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효성가 3세들의 해외 부동산 취득 의혹과 관련해 사실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수사에 착수했음을 시사했다.
검찰이 효성가 3세들의 해외 부동산 매입 실태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경우 효성그룹의 불법·탈법 시비와 맞물려 비자금 의혹 논란도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 움직임과 여론의 질타가 지속되자 효성 측은 10월 21일 해명 자료를 통해 효성가 3세들의 미국 부동산 취득 자금 출처 및 취득과정의 불법 의혹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식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효성 측은 “조현준 사장이 2002년에 해외 근무를 하면서 모건스탠리 급여, 부동산 담보 대출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부동산(빌라)을 취득했다”며 “조 사장이 당시 외국환거래법상 비거주자 신분에 해당돼 부동산 취득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해야 할 의무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효성 측은 또 조현상 전무가 작년에 취득한 하와이 콘도와 관련해서는 “해외 부동산 경기가 상승해 투자 목적으로 취득했다”며 “구입 자금은 대부분 대출로 충당했고 일부 개인 자금을 이용했다”고 해명했다. 효성은 이어 “2008년 6월 해외 부동산 투자 자유화로 거주자도 투자목적으로 한도 제한없이 해외 부동산 취득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효성 측의 주장대로 우리 정부는 2008년 6월부터 300만 달러로 제한했던 투자 목적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를 완전히 폐지한 바 있다. 다만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취득했더라도 임대소득이 발생했을 경우 국내의 거주지 관할 세무서에 이 사실을 신고하고 종합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조 전무가 구입한 콘도가 임대소득이 발생했는지 또 이를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명이 없어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는 상태다.
특히 조 사장이 LA에서 별장을 매입한 시기인 2002년은 해외 부동산 취득이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재미블로거 안치용 씨는 “당시 해외 부동산 취득은 2006년 5월까지 전면 금지돼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조 사장이 콘도에 투자한 사실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효성가 3세들에 대한 수사를 신호탄으로 정·관계를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해외 부동산 의혹 수사가 본 궤도에 진입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과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검찰이 국내 거물급들이 상당수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해외 부동산 불법·탈법 의혹 사건을 이슈화시켜 여론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효성 비자금 사건에 쏠린 국민적 시선을 따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치용 씨가 운용하는 블로그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관계와 재벌 총수 일가 등 국내 거물급 상당수가 미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와 관련된 미국 부동산 서류는 무려 15건이나 된다. 전 씨의 둘째 며느리인 탤런트 출신 박상아 씨는 2003년 조지아주에 소재한 단독주택(당시 시가 36만 5000달러)을 매입했다가 이듬해 40만 3800달러에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 씨의 아들 노재헌 씨는 뉴욕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100만 달러대의 고가 부동산을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관계인 이희상 한국동아제분 회장은 1987~2005년 사이에 뉴욕에서 두 차례의 부동산 매매로 20억 원 이상의 큰 시세 차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 초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전 수석의 경우 미국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9건의 글과 자료가 안 씨 블로그를 통해 공개돼 파문을 야기하기도 했다.
전·현직 재벌 총수 일가들도 미국 부동산 쇼핑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박용만 두산 인프라 회장은 올해 1월 뉴욕 맨해튼에 300만 달러를 투자해 초호화 콘도를 사들였고,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도 지난해 5월 박 회장과 같은 건물에 위치한 200만 달러대 콘도를 매입했다.
이밖에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부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손윗동서인 손명원 전 현대중공업 부사장 부부, 강문석 동아제약 전 사장, 김성환 금강제화 회장 등 재계 유명 인사 상당수가 미국 부동산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다.
특히 리스트에 올라 있는 거물급 인사 중 상당수는 해외 부동산 취득이 엄격히 제한돼 있었던 2006년 5월 이전에 부동산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외환관리법 위반 및 탈세·불법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일부 거물급 인사는 해외 비자금 은닉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해외 부동산 수사가 거물급들의 비자금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효성가 3세들의 해외 부동산 수사를 기폭제로 메가톤급 태풍으로 진화할 조짐이 일고 있는 검찰발 사정 드라이브가 언제 어떤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