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창가 유리벽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여성과 술판이 벌어진 룸살롱 풍경.사진제공=heymannews.com | ||
지난 11월 3일 구 대표를 만나 조금은 특별한 그의 직업에 대해 들어봤다.
구 대표는 처음부터 서울의 밤 문화를 탐방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주간지와 월간지 열혈독자였던 그는 당시 세태탐방 기사만 전문으로 실을 수 있는 신문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인터넷 뉴스 매체를 만들고자 했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포기했다고 한다. 그가 유흥가 기사를 쓰게 된 계기는 한 선배의 권유 때문이었다. 의기소침해 있는 그에게 언론계의 선배가 ‘직접 원고를 써서 기고해보라’고 권했고, 그는 경험담을 살려 ‘삐끼 술집 실태’에 관해 처음으로 기사를 썼다고 한다. 당시 약을 탄 술을 먹여 손님을 재운 후 술병과 안주접시를 테이블에 올려 술값을 부풀려 바가지를 씌우는 업소들의 수법을 고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구 대표는 “사실 내 자신이 당했던 일이었다”며 “룸살롱을 이용하는 일반인의 시선에서 접근했고 글도 전문 기자들의 기사 형식을 따라 하기보다 업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나 표현을 살려 생생한 현장감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기자들의 글보다는 마치 개인블로그의 글처럼 일반인의 입장에서 쓰다 보니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감이 들었고 꾸준히 인기를 얻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것을 계기로 프리랜서로서의 영역을 넓혀 주간신문에 서울의 밤 문화에 관한 원고를 연재하게 됐고, 이제는 처음의 목표를 달성해 <헤이맨뉴스>라는 사이트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구 대표는 르포 기사를 써 오면서 밤 문화가 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말한다. 그는 “밤 문화를 보면 나비효과가 떠오른다”며 “사창가나 술꾼들이 거리에서 늘어나는 현상을 그냥 피상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면 경제적, 정치적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품구입 등 개인의 소비욕구를 채우기 위해 성매매 업소에 발을 들여놓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엔 경제 불황에 따른 생활고와 고액의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또 유흥업소 트렌드를 보면 관전클럽이나 페티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 업소의 운영자들 중에는 유학파 출신들이 많으며 주 고객 또한 유학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수년 동안 밤 문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업소 여성들에게 듣는 유명인들에 대한 정보도 쏠쏠하다. 구 대표는 얼마 전 연예인들이 유흥가에서 보여준 다양한 행태에 대해 기사화한 적이 있다. 그는 “방송에선 다정한 남편감으로 알려진 일부 연예인들이 업소에선 진상을 떨곤 한다”고 소개했다. 현장을 취재하는 구 대표 입장에선 업소 여성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때가 많아 연예인 진상 손님들의 이중적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기사를 썼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나쁜 연예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 대표는 “<일요신문> 연예기사를 통해서도 보도됐지만 업계에 구전처럼 전해오는 이야기 중 ‘로또 연예인’이 있는 건 사실이다”고 귀띔했다. 업소 여성들의 말에 따르면 톱스타 A 씨의 경우 사창가를 방문해 두 번이나 업소 여성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새출발을 도왔다고 한다. ‘왜 여기에 오게 됐는가’ 등 사연을 들은 후 다시는 이쪽 일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장을 불러 빚을 대신 갚아 줬다는 것이다.
구 대표가 밤 문화 르포 전문기자로 성장하기까지는 고초가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취재비용은 빼놓을 수 없는 얘깃거리. 생생한 현장 취재를 위해 업소를 직접 방문하곤 했는데 한 번 갈 때마다 100만 원 안팎의 지출이 불가피해 사비를 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언론사의 고료나 취재비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현장취재를 위해 따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사비를 들여 일한 기간만 3년 정도라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사비를 들이면서까지 이 일을 계속하게 된 이유에 대해 구 대표는 “유흥업소 여성들을 인간극장의 시선으로 녹여내고 싶었다”며 나름의 포부를 밝혔다. 왜 이 일을 하게 됐는지에서부터 유흥가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말못할 속사정과 향후의 꿈까지 듣고 진솔하게 전달하려 했다는 것. 그런 점에서 그는 지난 삶에 대해 크게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키스방 같은 유흥업소가 유행하면서 ‘섹스를 하지 않는 곳’이라는 위안감과 시간당 4만 원 정도의 돈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여대생들이 쉽게 휩쓸리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구 대표는 “예전엔 다방이 이쪽 세계의 유입 경로였는데 요즘엔 키스방 같은 곳을 첫경험으로 해 유흥가로 진출하는 여대생이 많다”며 “일하다 보면 같이 일하는 동료와 인간적으로 친해지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데, 친분이 있던 업소의 동료가 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이고 고소득을 얻는 걸 보면 그때부터 마음이 흔들려 따라붙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구 대표에 따르면 서울의 밤문화는 경제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고객들의 주머니가 얇아지고 있는 요즘에 유행하는 건 일명 풀살롱. 1차 2차가 나눠져 있지 않고 모텔을 끼고 룸살롱을 운영해 원래 시간당 돈을 받던 것을 패키지 형식으로 한데 묶어 돈을 받고 있는 곳이 풀살롱이다.
구 대표는 “정치인과 기업인, 연예인, 일반 회사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유흥가에서는 사회의 자화상이 잘 드러난다”며 “르포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결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것이 아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구 대표는 그동안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경험과 실상을 녹여 내년 초쯤 책으로 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성매매 업소 등 유흥가 안에서 벌어지는 일뿐만 아니라 35만 원 고시원 쪽방을 이용 시간대별로 4명이 나눠서 사용하는 새로운 동거문화까지 포함시켜 생생하고 광범위한 서울의 밤문화 실상을 담겠다고 밝혔다.
손지원 인턴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