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 ||
최근 한 남자에게 공식적으로 항의를 받았다. “아니, 남자가 신입니까? 여자가 말을 하지 않는데 좋은지 안 좋은지 어떻게 압니까? 박훈희 씨는 섹스 중 여자가 보내는 흥분 신호를 읽으라고 하지만, 솔직히 섹스 중에 여자의 신호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물론 내 남자에게서가 아니었다. 여성 영화제인 ‘핑크 영화제’의 성 대담회에서 한 남자가 여자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 그러자 연애 카운슬러이자 팝 칼럼니스트인 김태훈 씨는 “여자들은 의사 표현이 불분명하다. 여기도 좋다, 저기도 좋다고 하니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진짜 좋은 건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되니까”라고 덧붙였다. 관객석에 앉아있던 남자들을 둘러보니 이 두 남자의 발언에 ‘그렇지, 그렇지’ 공감하거나, 혹은 ‘아, 내 속에 있는 말을 저 남자가 해주니 속이 다 시원하다’는 통쾌한 표정이었다. 물론 대답은 여성 대표격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내 몫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천천히 하세요”라고, “질주하는 남자가 여자의 신호를 읽는 것은 어렵겠죠. 하지만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애무를 하다보면 여자가 원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한 칼럼니스트는 나에게 이런 비유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섹스 중의 신호를 읽는 것은 지하철 안에서 서있는 남자와 앉아있는 여자의 교감과 같아. 다리가 아파서 앉을 기회를 엿보며 서 있는 남자는 앉아있는 여자가 자세만 고쳐 앉아도 몸을 움찔하잖아. 여자가 일어나는 줄 착각해서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한 거지. 섹스도 이와 비슷하지 않아? 남자가 진짜로 여자의 만족을 원한다면 여자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니까. 관찰의 힘은 대단하다고!”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남자는 여자의 신호를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여자를 관찰하려는 성의가 부족한 게 아닐까. 그런데 남자는 다시 한 번 항의했다. “그냥 ‘거기가 좋다’고 말로 해주면 안 되는 겁니까?”라고.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남자가 여자의 신호를 읽는 것을 얼마나 어려워하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대답했다. “남자의 성감대가 페니스인 것처럼, 여자의 성감대도 클리토리스와 G스폿이죠. 가슴, 귀, 엉덩이, 허벅지 등의 성감대는 모두 잘 알고 계시죠. 그런데 그 외의 성감대를 말하자면,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차도 있겠습니다만, 여자의 성감대는 매번 바뀌니까요.”
여자의 성감대가 매번 바뀐다고? 남자뿐 아니라 관객석의 여자들도 몇몇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마다 성감대가 다른 것이 아니라, 매순간 여자의 성감대가 바뀐다고? 이번에는 여자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때는 눈꺼풀도 제 성감대입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관객석의 남자들은 여전히 ‘말도 안돼’라는 표정을 지었고, 여자들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눈꺼풀은 성감대라고 할 수 없지만, 키스할 때에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애무하거나 부드럽게 키스해주면 눈꺼풀도 성감대가 된다. 이때는 머리카락도, 입술도, 심지어 볼도 성감대로 느껴질 수 있다. 평소 성감대가 아니던 신체 부위도 남자가 어떻게 자극하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성감대로 바뀌는 것. 발가락도 성감대가 아니지만, 남자가 입에 무는 순간 그곳이 성감대로 바뀌지 않는가. 얼마 전 나는 고깃집에서 발가락 애무를 받고 순간적으로 성욕을 느꼈다. 옆에 앉은 그가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슬며시 내 발을 만지는데, 갑자기 입안이 더워지면서 하반신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내 발가락을 자극했을 뿐인데 나는 그가 내 가슴을 움켜쥔 것처럼 흥분했던 것. 그 순간 나는 ‘아, 오늘 밤 이 남자와 자겠구나’라고 직감했다.
오르가슴에 이르는 제1단계는 자신의 성감대 중 유난히 흥분도가 높은 ‘쾌감 스폿’을 찾는 일이다. 쾌감 스폿을 집중적으로 자극해주면 육체가 서서히 흥분되면서 여자는 페니스의 삽입을 간절하게 원하게 되니까. 애무시 여자가 유난히 간지러움을 느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공략하면 쾌감이 배가된다.
여자의 이 신호를 읽으려면 남자는 천천히, 그리고 한 신체부위마다 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눈꺼풀, 발가락뿐 아니라 머리카락, 겨드랑이, 배꼽, 무릎 뒤 등 같은 부위라도 남자가 어떻게 애무 혹은 페팅하느냐에 따라 쾌감은 천차만별 달라지는 것을 남자들은 왜 모를까. 여자의 성감대는 온몸이라고 생각해주면 정녕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