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 안 국장은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에 고가의 미술품을 강매한 의혹을 받고 있다. | ||
안 국장의 혐의는 이미 언론을 통해 어느 정도 공개된 바 있다. 검찰은 고가 미술품을 매입한 기업 리스트나 국세청 직원들로부터 안 국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한 상태라며 수사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안 국장 또한 체포되기 일주일 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언론에는 할 말이 없고, 소환되면 검찰에 모든 얘기를 다 하겠다”고 말해 검찰이 소환하면 즉시 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안 국장 구속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국세청 로비 의혹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 속으로 들어가 봤다.
안원구 국장에 대한 검찰 수사 자료는 사실상 국세청 감찰팀에서 만들어 검찰에 넘겨졌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세청 내부의 파워 게임에서 밀린 안 국장이 스스로 조직을 떠나지 않자 ‘보이지 않는 손’이 안 국장을 밀어내기 위해 이번 작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미 수사가 시작되기 전 국세청 고위 관계자들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국장은 참여정부 때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으로 재직하다가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영전했다. 현 정권 이 출범한 이후에는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부임했다. 국세청 조직의 특성상 서울국세청 조사2국장을 지낸 인사가 세원관리국장으로 가는 것은 드문 일. 더구나 대구지방청장이 세원관리국장으로 발령난 것은 거의 두 단계나 하향전보 조치된 것이었다.
경북 의성 출신인 안 국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TK(대구·경북) 출신인 자신이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물을 먹은 모양새가 됐다.
국세청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안 국장이 밀려난 배경에는 국세청 내 ‘TK 적자’ 자리를 둘러싼 파워게임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안 국장이 또 다른 TK 실세로 통했던 L 씨에게 밀리면서부터 당시 한상률 청장도 그를 멀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정부 시절 국세청장에 임명됐던 한 전 청장은 정권이 바뀌자 ‘좌불안석’했고, 이 과정에서 TK 출신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게 국세청 내부의 정설이다. 안 국장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한 전 청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자신을 헌신짝 버리듯 멀리하자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었다고 한다.
이후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한 전 청장은 불명예 퇴진을 했고, 전(前)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안 국장은 ‘그림 로비’ 발설자로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안 국장은 이때부터 국세청 고위층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았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특히 그는 “그림 강매 의혹은 일부 언론의 취재과정에서 불거진 것일 뿐 나와 아내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한 국세청이 자신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미국 대기 발령을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국장은 인사에 강한 불만을 품으면서도 미국 파견을 가기 위한 필수조건인 영어시험을 준비하는 등 ‘오기’를 보였으나 몇 개월 동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이에 국세청은 다른 사람을 대신 미국으로 발령냈고, 안 국장에게는 사퇴를 종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안 국장은 사퇴 종용을 거부하면서 끝내 영어시험에 합격했고, ‘명예회복을 위해 반드시 미국에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국장이 뜻을 굽히지 않자 국세청은 안 국장을 내보낼 만한 ‘특단의 카드’를 내세웠고, 결국 그것이 이번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안 국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모 갤러리를 압수수색해 미술품을 산 기업들의 명단을 입수했다. 수사 초기에는 해당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듯 모두 대가성을 부인해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 건설사와 모 중공업 관련자들에게서 일부 대가성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수사가 다시 급물살을 탔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기업 관계자들의 증언까지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검찰이 안 국장을 긴급체포한 이유와 관련해선 갖가지 뒷말이 나돌고 있다. 수사진은 “체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정당국 일각에선 검찰이 안 국장을 긴급체포하게 된 데에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안 국장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등에서 요직을 거쳤고 주요 직책에 있는 동안 국세청 고위직은 물론이고 유력 인사들과 관련한 고급 정보 등 상당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청장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그림 로비’ 사건이 터진 이후 국세청 내부에서조차 안 국장의 입을 ‘판도라의 상자’로 비유하고 있을 정도다.
안 국장 역시 검찰의 수사망이 자신을 옥죄어 오자 특단의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안 국장은 검찰에 체포되기 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는 자료를 정리하고 있으니 다시 연락하겠다”며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안 국장은 일주일 뒤 검찰에 긴급체포되고 말았다.
안 국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국세청은 안 국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폭탄발언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분위기다. 안 국장 사건을 비롯해 국세청의 조직적인 비리 실태를 취재하고 있는 언론사의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기관 일각에서는 안 국장이 지난 17대 대선과 관련해서도 적지않은 비파일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안 국장 구속 후폭풍이 자칫 정치권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검찰이 구속 전에 안 국장을 긴급 체포하면서 신병을 확보한 것도 안 국장의 폭탄 발언 및 그의 반격을 차단코자하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안 국장에 대한 수사가 한 전 청장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그림 로비’ 수사로까지는 확대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안 국장 스스로 ‘그림 로비’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는 데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한 전 청장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한 전 청장이 가지고 있었다는 그림 중 몇 점이 현 정권 실세에게 흘러갔다는 설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검찰이 이러한 총체적인 의혹들에 대해 대대적인 사정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분명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