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는 P 사가 코스닥 업체 4~5곳의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것으로 보고 지난주 P 사 한국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일요신문> 취재 결과 밝혀졌다.
P 사에 대한 검찰 수사에 증권가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동안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었던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먹튀’ 관행에 검찰이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P 사가 S 그룹을 포함한 국내 몇 개 대기업의 해외채권 발행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는 점도 검찰 수사에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P 사는 작년 주식시장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재벌가 자제들의 주가조작에 연관됐던 회사에도 지분 참여를 하고 있어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선 다른 곳으로 불길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 외국계 투자회사에 칼끝을 겨눈 검찰 수사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검찰은 P 사가 국내 기업이 발행한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취득해 주가가 오르면 단기간에 인수권을 행사해 시세차익을 얻는 ‘헤지펀드’의 전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계 ‘헤지펀드’는 자금사정이 어려워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지 못하는 국내 코스닥 기업에 접근해 BW를 발행하도록 유도한 후 이를 인수해 경영에 간섭하거나 인수권을 행사해 이득을 올려왔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타깃이 된 기업들은 이들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어려운 자금사정 때문에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코스닥 시장에서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이러한 관행이 ‘명동 사채업자들 뺨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금융업계에서 헤지펀드는 외국계 사채업자로 통한다. 어려운 기업에 투자해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는 탓에 ‘저승사자’라는 닉네임도 갖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국내 제도권 금융사가 외면한 기업에 거액의 자금을 쾌척하는 대신 계약시 수많은 독소조항들을 ‘지뢰’처럼 깔아놓고 등골이 휘도록 뽑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헤지펀드들은 대형 법률회사를 등에 업고 한국 법체계를 너무 잘 활용해 ‘법으로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특히 헤지펀드들은 연예인 테마주, 자원개발주 등 위험부담이 높은 코스닥 기업에 주로 접근한다.
그동안 많은 코스닥 기업들과 개미들이 헤지펀드로 인해 큰 피해를 입어왔지만 그들의 투자행태에 마땅히 불법적인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감독기관도 제재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검찰은 P 사가 적극적으로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잡고 사정칼날을 빼들었다. P 사는 지난 8월 12일 코스닥업체 E 사의 주식 132만 3147주(5.17%)에 대한 신주인수권을 신규 취득했다. P 사는 이틀 뒤인 14일 주당 3469원의 가격에 신주인수권을 행사했으며 보름 뒤인 31일 주당 6883원에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
홍콩계 유명 투자회사인 P 사가 E 사의 신주인수권을 취득했다는 소식에 개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보름간 E 사의 주식은 상한가를 쳤다. P 사가 지분을 처분하자 E 사의 주식은 곤두박질을 쳤다. P 사는 불과 보름 만에 두 배의 시세 차익을 올린 셈이다.
단기간에 막대한 시세차익을 올린 것이 E 사 하나 정도면 P 사를 주가조작 혐의로 몰고 가기 어렵지만 검찰은 몇몇 코스닥 회사도 P 사의 주식처분 이후 문을 닫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코스닥 업체 K 사가 갑자기 상장폐지되면서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P 사는 지난해 K 사의 지분 15%를 인수했다가 단기 차익을 올린 후 전량매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K 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P 사는 K 사의 지분을 팔아치운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코스닥 업체인 C 사의 지분을 20%가량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리고 올해 초 P 사는 또 다시 C 사의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전량 매도하고 빠져나왔다. C 사는 역시 상장 폐지의 수순을 밟아야했다.
문제는 K 사와 C 사 모두 자본잠식 상태의 회사로 투자가치가 별로 없었으며 마땅한 사업 아이템이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던 회사였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은 홍콩계 투자회사인 P 사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K 사와 C 사에 투자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P 사가 주식을 처분해버리자 투자금만 몽땅 날리게 됐다. 즉 P 사는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코스닥 업체에 마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접근해 돈을 투자한 뒤 주가가 오르면 금세 돈을 회수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P 사는 이외에도 2~3개 회사에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P 사의 이런 투자 행태가 전형적인 주가 조작이라고 보고 P 사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P 사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단순히 주가조작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P사는 국내 몇몇 재벌기업들의 해외채권을 발행하는 업무를 대행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P 사가 대행하는 채권 업무는 기업 오너 일가가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해외 채권 발행 과정에서 재벌들의 검은 돈이 숨겨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P 사는 지난해 주식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재벌 3세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모 기업 재벌 3세 A 씨가 투자한 G 사의 최대주주였다. 당시 A 씨는 G 사의 지분 중 극히 일부분만을 인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도 함께 가져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 최대주주였던 P 사와 A 씨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P 사의 한국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재원으로 S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P 사에 대해 “방법은 전형적인 주가조작이 맞는 것 같지만 전례에 비추어 볼 때 국내에 또 다른 전주(錢主)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