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5월 제부 신동욱 전 교수(오른쪽)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조만간 고소인과 피의자에 대한 소환 조사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수사 결과로는 신 전 교수 등 4명은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는 의견이어서 박 전 대표의 집안다툼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그동안 복잡한 집안싸움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나 ‘방관자’ 입장에 서 있었던 박 전 대표가 제부를 고소하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 봤다.
박 전 대표 측에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것은 지난 5월. 박 전 대표 측은 이춘상 보좌관을 대리인으로 해 제출한 고소장에는 동생 근령 씨의 남편 신동욱 전 교수 등 14명의 사람들이 피의자로 기록돼 있었다.
박 전 대표 측은 고소장을 통해 이들이 수개월간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적시해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박 전 대표 측 변호인은 김재원 전 한나라당 의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측에 따르면 박 전 대표가 신 전 교수를 고발하게 된 것은 신 전 교수와 그의 측근들이 박 전 대표의 팬클럽 홈페이지인 ‘호박넷’에 육영재단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박 전 대표를 비난하는 글들을 지난 2월~5월 사이에 계속 올렸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을 지낸 박 전 대표는 1990년 근령 씨에게 이사장직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90년대 이후 박 전 대표가 직접 육영재단 운영과정에 개입한 적은 없었다. 여권내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한 만큼 집안싸움이 자칫 대망론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의 불개입 의지에도 불구하고 육영재단 운영권 등을 둘러싼 집안싸움은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07년 박지만 씨의 측근들이 육영재단을 점거하고, 근령 씨를 몰아낸 이후 지금까지 이들 남매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집안싸움에 뒷짐을 지고 있었던 박 전 대표가 제부를 고소하는 등 적극성을 띠게 된 배경에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돼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 전 대표가 고소한 사람들은 ‘호박넷’에 올린 글을 통해 박 전 대표가 직접 육영재단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동생 박지만 씨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근령 씨를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육영재단을 지만 씨가 무단으로 강탈했고, 이를 박 전 대표가 방조했다는 논리다. 박 전 대표가 육영재단 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돼 있고, 실질적인 배후자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신 전 교수 등이 올린 글 중에는 중국 청도에서 신 전 교수가 지만 씨 측근에게 납치당할 뻔한 사건이 있었으며 이 사건 역시 박 전 대표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졌다는 주장도 있다.
신 전 교수 측은 ‘호박넷’에 올린 글에서 당시 실패한 납치계획을 박 전 대표가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지만 씨의 사주 하에 이뤄졌지만 박 전 대표의 허락 하에 진행됐다는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일련의 비난 글들이 세 달여 동안 쇄도하자 박 전 대표 측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지난 5월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정면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측은 자체 조사 결과 비방 글을 올린 사람들 대부분이 신 전 교수의 측근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전 교수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측근들이 이런 글들을 올렸다는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비방 글을 올린 사람들은 신 전 교수를 비롯해 정 아무개 씨, 홍 아무개 씨, 장 아무개 씨 등 모두 14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 중 10명은 신 전 교수의 측근들에게 아이디만 빌려줬던 것으로 밝혀져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내린 최종결론은 신 전 교수 등 4명이 지난 11월 18일 근령 씨가 육영재단 운영에서 배제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박 전 대표와 지만 씨의 음모가 있었던 것처럼 ‘호박넷’에 허위 글을 게재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5부에 배치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 검찰 측에서는 신 전 교수의 납치사건 신고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중국 공안 당국에 협조요청을 하는 등 진상파악에 나선 상태다. 또 검찰은 조만간 고소인과 피의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제부를 형사고발하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배경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동생들의 다툼은 가족 간의 불화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박 전 대표가 육영재단 사태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에 힘이 실렸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여야를 망라해 가장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괜한 집안싸움에 휘말려 이미지에 상처를 입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에서 신 전 교수를 직접 고소하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박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육영재단 사태 해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은 신 전 교수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불신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신 전 교수가 근령 씨와 결혼을 할 당시부터 박 전 대표와 이들 부부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근령 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측근들에게 “결혼식장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신 전 교수 고소건과 관련해 박 전 대표 측은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고발 조치를 취한 것일 뿐”이라며 “정치적 의도나 육영재단 사태 개입 등의 의도는 전혀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