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소재 중견 조선그룹인 SLS조선과 계열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9월 15일이다. 창원지검 특수부는 이날 SLS조선 본사와 이국철 회장(47)의 사무실, 서울사무소, 계열사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여 각종 자료와 컴퓨터 파일 등을 확보했다.
하지만 3개월에 걸친 전방위 수사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 결과는 초라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SLS그룹이 조성한 비자금 규모가 수 백억 원대에 이를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고, 전·현 정권 실세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도 설득력 있게 나돌았지만 검찰은 이러한 의혹을 파헤치지 못했다.
검찰은 이국철 회장 등 10여 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고 정·관계 인사들의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특히 SLS그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권 인사라는 점에서 검찰의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에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 A 씨와 여권 실세인 B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일부 피의자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두 사람의 연루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국철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전 직원이자 SLS그룹 전 고문인 전 아무개 씨에게 A 씨와 B 의원을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총 3회에 걸쳐 5000만 원을 건네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A 씨와 B 의원이 실제로 이 회장을 만났고, 비자금이 건네졌을 개연성이 높다”는 일부 피의자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의자들의 이러한 진술을 확보하고도 검찰은 관련자들을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11월 27일 전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법원은 11월 30일 “정황증거 자료만으로 영장 범죄일시를 특정할 수 없어 범죄의 소명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다만 법원은 전 씨가 A 씨와 B 의원에게 자신을 소개해줬다는 이 회장의 자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법원은 “전 씨가 검찰에서 이 회장에게 돈을 받고 A 씨와 B 의원을 소개해 준 시기를 2004년경이라고 진술했지만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는 2003년경이라고 진술을 번복해 법리상 구속이 어렵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뇌물수수의 경우 공소시효는 5년이다. 때문에 전 씨가 영장실질심사 때 진술한 대로 2003년도에 돈을 받았다면 공소시효가 완성돼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이 A 씨와 B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 혹은 관련자와 대질조사를 마친 후 전 씨를 구속했더라면 수사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구속과 불구속 여부를 놓고 시점이 핵심 변수가 된 상황에서 검찰이 이를 특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허술한 수사로 놓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전 정권 실세도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정황 진술을 받아냈지만 정작 해당 인물은 소환 조사 자체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부실 수사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검찰 측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위원을 지냈던 이 아무개 씨를 2005년 1월경부터 7월 사이에 SLS그룹 관계자로부터 4회에 걸쳐 80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0일 구속기소했다. 이 씨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선캠프에 깊이 관여한 뒤 참여정부 시절 공공기관 요직을 두루 거친 실세로 통했던 인물이다.
문제는 이 씨 외에 참여정부 시절 핵심 실세로 통했던 L 씨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씨는 SLS그룹 측으로부터 전동차사업 진입규제를 풀어달라는 청탁을 받고 당시 청와대 실세였던 L 씨에게 청탁 로비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L 씨에게 자금이 흘러갔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의 한 관계자는 L 씨에 대한 소환 조사 계획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여권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전 정권 인사들만 수사할 경우 편파·표적 수사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마무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