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 ||
비뇨기과 의사인 친구와의 대화. “우리 병원에 오는 상담자의 대부분은 성기능 장애지. 물론 1위는 발기부전, 2위는 조루.” 예상대로였다. 대한민국 남성의 양대 콤플렉스, 발기부전과 조루가 나란히 1, 2위를 다투고 있었던 것. 난 그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래서, 약을 먹으면 치료가 되긴 하는 거니?” 그의 말에 의하면, 발기부전과 조루는 약, 주사, 수술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가 된다. 그의 말을 듣자 더 궁금해졌다. 버젓이 치료약이 있는데, 왜 그때 그는 약을 먹지 않았을까. 왜 섹스 횟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던 걸까.
5년 전에 사귀었던 A는 발기부전이라 할 정도로 성기능 장애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A는 1일 1회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다. 연애 초기에는 밤에만 1일 2~3회, 아침에 다시 한 번이 기본 세트가 아닌가. 나는 의아했지만 그저 ‘A는 성욕이 약한 남자인가보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A가 1일 2회였던 시기는 1년 동안 그와 사귀면서 딱 세 번, 피스톤 2분 이내에 사정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는 “네가 너무 좋아서 심하게 흥분했나봐”라고 변명했고, 당연히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나 역시 “비뇨기과에 한 번 가봐”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가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나와 함께 있을 때에는 항상 키스, 애무, 포옹 등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에 나는 늘 정신적 오르가슴으로 충만해 있었다. 물론 그가 성기능 장애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나는 “비아그라 먹을까?”라고 제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을 해칠까봐 걱정이 되었을 테니까. 아마 내가 “비뇨기과에 가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는 즉시, 그는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거야? 그냥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을 뿐이라고”라며 펄펄 뛰었을 게 뻔했다.
여자는 사귀는 남자의 섹스 트러블이 있을 때, ‘헤어질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섹스 트러블을 대화로 극복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니,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주면 안 돼?”라고 성토하지만, 여자가 불만을 말하는 순간 돌변하는 남자가 한둘인가.
조루 증상을 보이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배 B는 “섹스를 못하는 건 참아도, 조루는 못 참아요. 사실 섹스를 못하는 남자가 얼마나 많아요. 내가 만족할 때까지 말로, 몸으로 가르치면서 하는 거지. 그런데 조루는 개선의 여지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B는 “왜 병원에 안 가는지 모르겠어요. 커닐링구스도 한 두 번이지 매번 오럴 섹스만 할 수도 없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바로 며칠 전 조루남과의 섹스로 분노했던 C는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키스와 애무로 한참 흥분시켜놓고는 막상 들어오자마자 사정. 나는 한참 흥분해있는데 그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니, 참, 화를 낼 수도 없고. 제가 조루를 몇 명 만나봤는데, 그들은 너무 말이 많아요. ‘원래 안 그렇다’는 등, ‘네가 너무 섹시해서 내가 너무 흥분했나봐’라는 등 핑계가 많죠. 게다가 삽입 전부터 ‘오늘은 어쩐지 금방 사정할 것 같아’라고 한 자락 까는 애들은 거의 조루 증세가 있는 애들이더라고요. 들어오자마자 끝날 거면 흥분시키지나 말든지”라고 말했던 것.
‘장어를 먹이는 여자친구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는 말에 한참을 웃은 기억이 있다. 여자친구가 모처럼 몸보신 시켜준다고 하면 남자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집에 일찍 들어가야겠다”라고 답한다나. 남자는 ‘오늘 밤 잘못 걸리면 나 죽겠는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의 거절을 들은 여자가 ‘아, 이 남자와는 헤어져야겠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여자가 남자의 몸에 신경을 쓸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성생활에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물론 성기능 장애는 장어로는 해결될 수 없다.
성기능 장애를 극복하려면 남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자각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요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렇지, 발기부전까지는 아니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벼운 우울 증세가 있는 사람이 ‘내가 정신병자는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몇 번 받고 가벼운 치료제로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마다하는가. 남자의 성기능 장애로 여자가 불만을 느끼고 있다면, 섹스 횟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병원 상담과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