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X파일’ 폭로 주역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수임했던 사건과 관련, 잡음이 일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
2008년 5월경부터 전 아무개 씨(45·여)는 8건의 민·형사 소송을 준비해왔다. 전 씨는 지난 2004년부터 자신이 거주하던 경기도 가평 뒷동산에서 건물 건축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 담벼락이 붕괴되고 물이 새는 등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전 씨는 “불법 공사를 이유로 수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했지만 가평군청과 경찰의 묵인 으로 공사가 중단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본격적인 법정 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 씨는 기존에 선임했던 변호사를 해임하고 새로운 변호사를 찾았다. 변호사 교체 이유에 대해 전 씨는 “기존 변호사가 돈만 요구하고 변론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인들에게 재판준비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전 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수녀에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소개받았다. 가톨릭 신자였던 전 씨는 1998년경부터 가평 자신의 집에서 ‘피정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주변에 알고 지내던 신부와 수녀 등이 많았다고 한다.
2008년 5월경 사제단에 접촉한 전 씨는 이곳에서 J 신부를 처음 만나게 됐다. 전 씨의 하소연을 들은 J 신부는 곧바로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를 도와 변론을 맡았던 김영희 변호사였다.
2008년 6월 19일 전 씨는 김영희 변호사와 1차 계약을 맺었다. 1심까지 4건의 소송대리를 맡는 조건으로 착수금 1200만 원에 성공 보수는 별도로 지급하기로 했다.
변호인으로 선임된 김영희 변호사는 전 씨에게 김용철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전 씨는 “김영희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에 각종 권력이 개입돼 있다’고 전하자, 김 변호사는 ‘윗선에 힘을 쓸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하다’며 김용철 변호사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전 씨는 김영희 변호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김용철 변호사에게 550만 원의 수임료를 계좌로 입금시켰다고 한다. ‘삼성 X파일’ 폭로 사건의 동지로 활약했던 두 사람이 사건 해결을 위해 다시 손잡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전 씨는 “변호사 선임이 끝난 후 워낙 유명한 변호사들이었기 때문에 사건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건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전 씨는 “김용철 변호사가 사건에 뛰어든 이후 오히려 더 안 좋은 쪽으로 재판이 전개됐다”고 주장했다. 전 씨의 주장에 따르면 김용철 변호사가 선임된 후 김영희 변호사는 재판 일에서 거의 손을 떼다시피했다. 그렇다고 김용철 변호사가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전 씨는 심지어 “답변 기일을 놓쳐 대검찰청에 고발했던 한 사건이 각하되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씨는 김용철 변호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수임 후에 단 두 차례밖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처음 사건을 수임한 후 김영희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면을 했고, 2008년 8월 15일 김용철 변호사의 천주교 영세식에 무작정 찾아가 얼굴을 본 것이 전부라는 것.
또 전 씨는 재판 당사자였던 시공 업체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피소돼 의정부지법으로부터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던 것도 모두 두 변호사의 직무태만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전 씨는 “수차례에 걸쳐 두 변호사에게 업무를 방해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장을 작성할 때 그 문구를 빼먹어 문제가 된 것”이라며 “이 건 역시 변호인의 직무태만으로 피해를 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전 씨는 이런 이유로 2008년 11월 이들 변호사에게 수임료 반환을 요구했다. 이와 동시에 변호사협회(변협)에 이중수임계약 위반, 직무태만 등을 이유로 두 변호사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 씨가 기자에게 제시한 서류들을 살펴보면 김영희 변호사는 전 씨에게 수임료 반환 요구를 받은 직후 수임료를 모두 돌려줬다. 다만 김용철 변호사의 경우 반환 요구를 받은 지 한 달여 후인 12월경에 돈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전 씨는 “김용철 변호사는 ‘돈이 없다’며 버티다가 변협에 진정서를 넣자 문제가 될 거 같으니깐 그제서야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전 씨의 일련의 주장들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지난 12월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의뢰인과 수시간에 걸쳐 전화 통화를 하고 수차례 만나며 상담을 했다”며 “맡은 일을 다 해줬지만 구설수에 휘말리기 싫어 돈까지 다 돌려줬는데도 (전 씨가) 주변에 이상한 얘기를 하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사건에 대해 무고가 되면 의뢰인이 오히려 피해를 볼 여지가 있어서 무모한 고소는 하지 말자고 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직무태만 운운하는 것 같다”며 ‘제대로 일을 해주지 않았다’는 전 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김영희 변호사 측에서도 김용철 변호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 변호사는 변협에 제출한 경위서를 통해 “김용철 변호사는 수임료를 송금 받은 직후 의정부지검에 찾아가 검찰 지휘라인을 직접 만나 상당한 시간 동안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변론을 했으며, 수사관에게도 전화로 변론하는 등 할 만큼 했다”며 “의뢰인과도 직접 만나 상당한 시간 상담을 했고 수차례에 걸쳐 장시간 전화통화를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이중수임 문제에 대해 “의뢰인(전 씨)의 요청에 따라 김용철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지 종용한 것이 아니며, 하나의 사건에 공동변호인이 선임되는 경우도 흔해 이를 이중수임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두 김 변호사의 반박으로 사건이 쉽게 끝날 분위기는 아니다. 전 씨가 현재 김용철·김영희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 중 각하된 형사고발 건에 대해 진정서 청구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전 씨는 당시 사건이 각하된 것에 대해 “변호사의 직무태만으로 답변 기한을 넘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 X파일’ 사건의 중심에 섰던 거물급 두 변호사가 수임료를 돌려주는 수모까지 당했는데도 자칫하면 검찰에 소명서를 제출해야 할 상황까지 몰리고 있는 셈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