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걸프렌즈> | ||
내게 키스와 섹스를 가르쳐준 옛 남자친구와의 에피소드. 키스와 섹스를 가르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차서 웃을 노릇이지만, 대학교 1학년 때의 나는 남자친구에게 키스를 배웠다. 키스를 할 때마다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혀를 쭉 뻗지 못하고 입안에서 오물거리고 있던 내게 그는 “너, 혀가 되게 짧은가봐. 나한테 오질 않아”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물론 나의 문제는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었던 것도, 테크닉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부끄러웠을 뿐. 그의 압박 혹은 격려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키스를 너무 좋아하면 혹시 그가 나를 밝히는 여자로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나에게 키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 목청에 닿을 때까지 혀를 쭉 내밀어라’ ‘너의 혀로 내 이빨과 혀를 구석구석 핥아라’ ‘가끔은 내 혀를 흡입해라’ 등등 구체적인 가이드였다. 급기야 그는 키스를 가르쳐주겠다며 나를 비디오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그가 고른 영화는 <투문정선2>. <투문정선>의 베드신에 흥분했던 그는 나의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그 영화의 속편인 <투문정선 2>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영화를 보고 키스에 적극적인 여자가 되었냐고? 절대 아니다. AV라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게 <투문정선2>는 너무 야했다. 그래서 불쾌했다. 이제는 <색, 계>를 보면서도 웃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자친구와 야한 영화를 보는 것은 불편하다.
그래서 여자가 성욕을 느끼는 영화는 무엇이냐고? 크리스마스의 뜨거운 밤을 위해 강원도 콘도를 예약하고 DVD를 준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영화가 예술적인 에로영화라 불리는 <나인 하프 위크>라면? 준비성은 좋으나 센스는 부족한 그에게 60점 이상의 점수를 주긴 어렵다. 여자의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AV를 준비한 남자는? 30점도 채 줄 수 없다. 여자가 성욕을 느끼는 영화는 노출 수위가 높은 영화가 아니라 감정 수위가 높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홍보사에 다니는 A는 “<언페이스풀>의 다이안 레인이 낯선 연하남과 섹스를 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환희에 차서 혼자 비실비실 웃잖아요. 그녀의 기분에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로맨틱한 음악이 흐르고 가볍게 왈츠를 추면서 남자와 몸을 맞대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성욕이 솟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영화 속 커플의 로맨틱한 장면을 보면서 흥분을 느낀 것. 나 역시 마찬가지다. AV 속 아오이 소라가 낯선 남자와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장면, <나인 하프 위크>의 유명한 에로신보다는 <위대한 유산>에서 기네스 팰트로가 에단 호크에게 키스할 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브래드 피트가 케이트 블란쳇에게 애무할 때에 어쩐지 남자의 어깨에 기대게 되니까 말이다.
수위가 높은 AV는 여자의 성욕을 오히려 다운시킨다. 반면 감미로운 멜로신은 여자의 가슴을 뜨겁게 해 성욕을 자극한다. 이것은 비아그라가 남녀에게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페니스의 발기를 지속시키는 남성용 비아그라는 남자가 성욕을 느낄 때 생기는 ‘사이클릭 GMP’라는 화학 물질이 분비되는 것을 돕고 발기 저해 물질인 ‘PDE 5(포스포디에스테라아제)’를 분해한다. 반면 여성용 비아그라로 알려진 ‘플리반세린’은 버자이너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약품이 아니다. 남자는 육체적 쾌감만으로도 오르가슴에 쉽게 도달하지만, 여자는 정서적 교감이 완성되지 않으면 오르가슴을 경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남자는 포르노를 보고 쉽게 흥분하지만, 여자는 포르노를 보여주면 성기는 흥분하지만 감정은 흥분하지 않는다. 여자가 포르노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더 흥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자의 오르가슴을 돕기 위해서는 감정의 격양을 도와야 한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여성 갱년기, 우울증 치료가 되는 호르몬으로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성감이 고조되어 오르가슴에 쉽게 이른다고 한다. 여성용 비아그라는 바로 에스트로겐의 분비를 촉진하는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라토닌, 페닐에틸아민의 분비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여자의 성욕을 자극하고 싶다면 감정신, 감미로운 키스신, 애절한 섹스신이 많은 영화를 골라야 한다는 의미. 그러고 보면 멜로 영화가 여성용 비아그라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