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김 씨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김 씨가 근무하는 여행사 대표 A 씨(여·46)였다. 대표 A 씨도 술만 마시면 유독 거칠어지고 다혈질로 변하는 김 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A 씨는 김 씨를 따로 불러 김 씨의 술버릇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직원들과 대표로서의 자신의 고충을 얘기하며 타일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변하겠다는 김 씨의 다짐은 그때뿐이었다. 김 씨는 자신보다 어린 여자상사 A 씨가 하는 충고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때도 있었다. 결국 여행사 대표 A 씨는 지난 8월 24일 김 씨에게 “(김 씨가) 평소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거칠어져 회사 근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니 회사를 퇴사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완곡한 부탁이었지만 김 씨에게는 해고통보나 마찬가지였다.
대표 A 씨는 해고통보를 한 날 김 씨와 술을 한잔 기울이기로 했다. A 씨는 김 씨가 떠날 땐 떠나더라도 그간의 앙금은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A 씨의 일행과 김 씨는 그날 저녁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한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대표 A 씨는 김 씨를 포함한 일행과 이야기를 하다 “그동안 직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자신의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이 발언이 화근이 됐다. 같은 날 A 씨로부터 퇴사 권고를 받고 앙심을 품고 있던 김 씨는 대표가 언급한 ‘직원’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A 씨의 발언에 자존심이 상한 김 씨는 또 다시 격분했다.
김 씨가 흥분하자 대표 A 씨는 냉랭해진 술자리를 피할 겸 잠시 밖으로 나갔다. 곧 김 씨도 A 씨를 따라 나섰다. 김 씨는 자신에게 퇴사 권고를 한 A 씨를 발견하자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김 씨는 A 씨를 인근 부둣가로 억지로 끌고 가 바다에 빠뜨렸다.
바다에 빠진 A 씨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이미 이성을 잃은 김 씨는 생각보다 물이 얕아 A 씨가 가라앉지 않자 뒤따라 뛰어들어 A 씨의 머리를 잡고 익사시키려 했다. 그러나 곧 A 씨의 다급한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밀려오자 김 씨는 그제야 A 씨를 구조하는 척 하며 뭍으로 끌어올렸다.
김 씨는 자신은 구조를 한 것뿐이라며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바다에 빠졌던 대표 A 씨도 산소포화량이 치사 직전까지 이른 상태라 일부기억을 상실해 진술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병대 출신으로 해상구조에 익숙했던 김 씨가 그리 깊지 않은 물에 빠진 A 씨를 치사 직전까지 구조하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김 씨가 A 씨를 익사시키려 한 것으로 보였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도 이어졌다. 결국 김 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1월 28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김양호)는 김 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범행으로 피해자가 생명을 잃을 수 있었던 점에 비춰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다. 법원 관계자는 “A 씨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격자 진술과 정황 상 무죄라는 A 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는 피해자와 합의를 한 상태다. 합의를 했어도 죄질이 무거워 실형을 피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술을 이기지 못한 사람의 비참한 말로는 3년 간 영어의 몸이 되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연말 술자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판결은 일종의 경고가 되고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