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인수에 1년 넘게 공을 들여온 교보생명이 입찰 마감 하루를 남겨놓고 인수전 불참을 선언, 그 배경과 관련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사진은 교보생명 본사 전경. 일요신문 DB
우리은행 매각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로 예상됐던 사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시작해 이미 세 차례나 실패한 전력이 있는 데다, 마땅한 매수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금융당국은 자신감을 보였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처음 우리은행 매각을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할 당시부터 “살 만한 곳들이 있다”며 인수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신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직을 걸고 민영화를 완수하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미심쩍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우리은행 같은 대형 매물을 살 만한 주체는 사실상 금융지주사들뿐인데, 이들은 이미 다른 은행과 합병을 추진 중이거나 저축은행, 증권사 등을 인수해 자금여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매각작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도 금융권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후보는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교보생명이 “해외자본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정도가 전부였다.
교보생명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 이은 생명보험업계 3위(총자산 기준)로,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데다 4위인 농협생명의 추격까지 거세지면서 돌파구 마련에 고심해왔다. 하지만 입찰 마감을 하루 남겨놓은 지난 11월 28일 교보생명은 돌연 “우리은행 지분 인수 타당성에 대해 해외공동투자자 및 컨설팅사와 검토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됨에 따라 이번 인수 참여를 유보키로 결정했다”며 인수전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교보생명은 이보다 앞선 11월 18일 이사회를 통해 우리은행 경영권 매각 입찰 여부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경영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한다”며 결론을 미뤘고, 25일 열린 경영위에서도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입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상태였다.
교보가 막판에 불참을 선언한 이유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겉으로 드러난 가장 큰 이유는 자금 확보 문제다. 우리은행을 인수하려면 3조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현재 교보생명의 여유 자금은 1조 3000억 원으로 필요한 금액의 4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조 7000억 원은 외부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
이를 위해 교보는 외국계 자산운용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나머지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분주히 외국 자본들과 접촉했다. 실제로 교보는 최고위 경영진이 인수 포기 선언 하루 전날까지 해외출장길에 나서며 조율을 거듭했다. 그러나 해외 자본들이 우리은행 경영권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컨소시엄 구성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수 불참이 교보 내부 문제나 컨소시엄과의 이견보다는 당국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당국의 의중’을 놓고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주로 거론되는 인수 불참 배경은 ‘금융당국’인데, 1인 오너 체제인 교보의 지배구조를 당국이 내심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속내를 가진 만큼 인수우선협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추후 진행될 대주주 승인 과정에서 퇴짜를 맞을 수 있는 만큼 아예 입찰을 포기했다는 것이 ‘금융당국 비토론’의 요지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4번째 무산됐다. 사진은 우리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다는 점은 유일한 입찰자가 중국의 안방보험이었다는 점과도 맞물린다. 만약 교보가 입찰에 참여해 유효경쟁이 성립됐는데 인수희망 가격이 안방보험보다 낮을 경우 안방보험이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얻는다. 설령 교보가 더 높은 가격을 써냈더라도 대주주 승인을 받지 못해 우선협상자 자격을 박탈당할 경우에도 차순위인 안방보험이 우리은행을 차지하는 경우가 나오게 된다.
교보가 입찰에 참여해 유효경쟁이 성립되면 중국 회사에 대한민국 정부가 소유한 은행을 넘겨주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 경우 국부유출에 정부가 앞장섰다는 비난이 일 수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또 다른 당국으로 거론되는 ‘정부당국’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당국은 지난 8월 새로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을 일컫는다. 이 주장은 앞서 언급한 금융당국의 의중 변화를 전제로 한다.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인수주체의 자격에 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 우리은행 민영화 의지를 내비치면서 “국내 금융전업가 그룹을 육성하겠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보험 등 다른 업종을 갖고 있는 금융사의 입찰 참여를 환영한다는 의미가 담긴 발언인 셈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회사가 교보생명이었다는 점에서 교보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개인 최대주주가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대형 금융지주사를 제외한 모든 국내 금융사는 따져보면 주인이 있는 곳들”이라면서 “개인 대주주는 불가하다는 기준이 적용된다면 국내에서 우리은행의 경영권을 살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없다는 모순된 결론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다른 금융사 관계자도 “막판까지 해외투자자를 만났던 교보가 마감시간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인수계획을 접은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면서 “정부의 경제팀이 교체되면서 금융위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고 전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교보생명이 ‘입찰 포기’가 아닌 ‘유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추후 재도전 여지가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셈이다. 국내 최초의 ‘어슈어뱅크(Assure Bank·보험은행)’를 꿈꾸는 교보생명이 ‘당국’의 회의적 시각을 넘어 숙원을 이룰 수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