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전우치> | ||
남자는 “여자들의 섹스야말로 이기적이야”라고 말한다. 남자가 일방적으로 섹스를 리드하는 이유는 사실 여자가 너무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항변.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지겹다. 이래도 심드렁, 저래도 심드렁하니, 내가 주도할 수밖에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자는 낑낑대고 있는데 여자는 ‘좋다’ ‘싫다’ 표현도 안 하니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리고 남자가 ‘여기는 어때?’ ‘이 체위는 어때?’라고 물어보면 ‘눈치도 없이 자꾸 물어본다’고 타박하지. 그럼 그동안 여자는 뭘 하는데?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남자가 G스폿을 못 찾는다고 구박만 하고, 남자가 애무해달라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하잖아. 대체 어쩌라는 거야? 여자들이야 말로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극적이던 여자가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돌변했다면? 절정에 이를 때 신음소리를 내는 것도 부끄러워하던 여자가 가슴을 애무했을 뿐인데 간드러지는 교성을 낸다면? 후배위를 질색하던 여자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체위를 바꿔 엉덩이를 들이댔다면? 평소 알몸을 보이는 것조차 쑥스러워하던 여자가 여성상위에서 자위를 했다면? 잠자리에서도 숙녀처럼 다리를 벌리려 하지 않던 그녀의 다리 각도가 90도에서 180도로 눈에 띄게 벌어졌다면? 급기야 “우리, 69체위 해볼까?” “내 친구가 이 DVD에 죽이는 체위가 있다는데, 따라해 볼래?”라고 말했다면? 남자는 속으로 외친다. ‘빙고!’ 물론 그날의 섹스는 오르가슴 지수 200% 이상,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날의 섹스가 끝나는 순간, 담배를 입에 물면서 남자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여자, 바람피웠나? 저 체위를 어디서 배웠지?’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이 여자를 어떻게 감당하지?’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하. 여자가 보기에 이 걱정은 우습다. 남자의 고민은 ‘이제부터’가 아니라, 사실은 ‘그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자의 변신? 그것은 불만의 마지막 표현이니까.
여자의 섹스 애티튜드가 달라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바람이 났거나, 그의 테크닉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도저히 못 참겠거나. 즉, 다른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 새로운 체위와 애무를 경험하면서 섹스의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됐거나, 아니면 더 이상 남자에게 해결책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만족도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안하던 체위를 시도하는 것과 섹스에 소극적이었던 여자가 적극적으로 변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섹스에 소극적이었던 여자가 적극적으로 변신했다면, 바람이 아닐 확률이 99%다. 바람난 여자가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덤비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여자가 갑자기 섹스에 적극적으로 변했다면? 바람은 아닐지 몰라도, 이 역시 그리 바람직한 상황만은 아니다. 여자의 변신이 어떤 의미로든 남자에게 적신호인 것만은 확실한 것. 소극적인 여자는 대부분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다. 그런 캐릭터의 여자가 잠자리에서 알몸으로 덤비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나. 오죽하면 잠자리에서 적극적으로 변했겠느냐 하는 말이다. 남자친구의 테크닉에 만족하지 못하던 후배 A는 “실제 섹스로는 만족이 안 되니까 야한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지. 그러다가 어느 날, ‘아, 저 체위를 하면 진짜 저렇게 신음소리가 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 거야. ‘남자친구와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그에게 ‘이거 해보자’는 말이 차마 안 나오더라구”라고 말했다. 결국 A는 섹스 애티튜드를 바꾸는 대신, 남자친구를 바꾸었다. 그리고 “새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첫 섹스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애무했어. 날 요조숙녀 취급하는 남자에게 갑자기 요부로 돌아서긴 힘들더라고. 그랬더니 한결 만족스럽더라. 앞으론 잠자리에서 수동적인 여자는 되지 않을 것 같아”라고 덧붙였다.
여자의 변신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오늘 한번 해볼까’ 하는 충동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란 말씀.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의심을 각오하고 변신을 시도했을 때에는 그만큼 남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당신을 리드한다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 그 체위와 애무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녀의 리드를 따라가 보면 어떨까. “너 바람났지?”라고 묻는 대신 말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