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일간지에 실린 매일유업 회수광고. 크기도 작은 데다 제목이 한자로 돼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
지난해 12월 14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매일유업의 ‘프리미엄 궁 초유의 사랑2’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대장균이 검출된 사실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즉각 회수명령을 내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프리미엄 궁’을 먹여 온 엄마들은 분노했다. 게다가 지난해 7월 ‘프리미엄 궁 초유의 사랑1’(태어난 후부터 100일 전까지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서 사카자키균이 검출된 지 5개월 만의 일이라 엄마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환불을 요청하려고 매일유업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매일유업은 ‘위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안내하라’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공표명령을 비양심적으로 이행한 것으로 알려져 소비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령 28조는 ‘(공중위생상 위해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제품에 대한) 공표명령을 받은 영업자는 지체 없이 회수광고를 서울특별시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두 곳 이상의 일간신문에 게재해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일유업은 지난해 12월 16일 특정 일간지와 경제신문 두 곳에 회수광고를 실었다. 하지만 초판 신문에만 회수 안내문을 게재한 뒤 곧바로 광고문을 내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궁’에서 기준치 이상의 대장균이 검출된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
전국으로 배달되는 일간지는 교통 여건에 맞춰 하루에도 수차례 신문을 발행하는데 초판 신문은 지방 소도시에만 주로 배달된다. 따라서 전국에 있는 소비자들이 위 사실을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회수 안내 광고가 게재된 한 일간지의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해당 일자 신문(PDF파일)을 확인해 본 결과 ‘제품회수문’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안내 광고문은 크기도 작은 데다 제목이 한자(製品回收文)로 돼 있어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이와 관련 1월 13일 기자와 통화한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명령 자체를 이행 안했다고 볼 순 없지만, 전국 소비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책임지고 알리라는 법의 취지에 벗어난 행동이었다”며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신문사가 이에 동조해 편법으로 광고를 실었다는 점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매일유업의 이 같은 편법행위에 분개하는 소비자들이 늘자 지난 1월 8일 최동욱 사장은 ‘고객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합니다’란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대장균 분유 파동은 서서히 가라앉는 듯했다.
대장균 파동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매일유업은 최근 그룹 3세의 호화 생활이 일부 언론에 노출되면서 또다시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 1월 10일 방영 예정이었던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파파리치> 주인공 4인 중 한 명이 매일유업 창업주의 외손자인 박 아무개 씨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파파리치>는 제목 그대로 부자(rich) 아버지(papa)를 둔 재벌 2, 3세의 삶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지난 10일부터 8주 동안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방송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 예고편이 나간 이후 재벌 2, 3세의 초호화 생활을 둘러싼 네티즌들의 비난이 속출하면서 방송은 잠정 보류된 상태다. 예고편에 등장한 인사는 박 씨를 비롯해 유명 프랜차이즈 소아과 원장 아들인 엄 아무개 씨, 금융 재벌 2세 윤 아무개 씨, K 그룹 외손자 김 아무개 씨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달에 3000만 원 정도는 쓴다” “2억 원어치를 일시불로 즉시 구매” “발렌타인 30년 산밖에 안 마신다” “최고급 외제차 2대를 소유하는 건 기본이다” “욕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등 이들 4인의 발언은 방송 예고편을 통해 가감없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온스타일 게시판에 “한 달에 3000만 원이라면 2500~3000원 하는 담배를 1만 갑을 펴야 한다” “국민 99%가 느낄 소외감을 외면한 방송이다” 등 강한 비판과 함께 방송 취소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온스타일 제작진은 자체 비상심의위원회를 소집해 논의한 결과 ‘방송을 잠정 보류한다’는 결정을 공지했다. 방송계 일각에서는 4인방의 <파파리치> 출연으로 이미지 타격을 걱정한 대기업 측에서 ‘방송 취소’를 요청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13일 기자와 통화한 온미디어 관계자는 “대기업 이미지 문제로 방송이 보류된 것은 아니다”고 일축하면서 “<파파리치>가 방송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주 동안 온라인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파파리치 4인방 중 1인이 매일유업 3세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매일유업 홍보실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언론사 등의 질문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박 씨는 매일유업 창업주 고 김복용 씨의 외손자다. 김 씨의 셋째 딸 김진희 씨(평택물류 대표)의 외동아들이기도 하다. 박 씨의 어머니는 매일유업의 지분 2.61%를 소유하고 있다.
생전의 창업주는 매우 검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바바리코트 하나를 40년 동안 입고, 같은 승용차를 12년 동안 탄 것으로 유명하다. 또 10만 명당 3명에 불과한 희귀병 유아를 위해 특수 분유 개발을 지시한 일화는 지금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검소하고 따뜻한 경영자였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초호화 생활로 구설수에 오른 박 씨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대장균 파동으로 고객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그룹 3세의 초호화 생활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기업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는 매일유업이 산적한 암초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정유진 기자 kkyy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