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싸움>. | ||
옛 남자와 오랜만에 만나 섹스를 한 후 등을 돌리고 잔 친구 A의 섹스담. 얼마 전 A는 2년 전에 헤어진 옛 남자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그런데 옛 남자의 섹스 취향은 여전히 이기적이었다. A의 기분과 상관없이 오럴 섹스를 원했고, 삽입 후에도 내키는 대로 체위를 바꾸어 A의 흥을 툭툭 끊어놓았던 것. A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가 A에게 불만을 토로하더란다. “넌 어쩜 그렇게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자냐? 우리가 섹스 파트너도 아니고”라고 했다나? 이 말을 들은 A는 나에게 성토했다. “섹스 후에 남자 팔을 베고 자는 것은 연애 초에나 하는 짓이지, 사실 너무 불편하지 않아? 내가 옛 남자친구에게 무슨 환상이 남아있겠어. 섹스도 그저 그랬고, 잠이나 편하게 자려고 등을 돌린 거지. 아니, 나도 좋아하는 사람과 섹스했다면 아무리 숨이 가쁘고 답답해도 꼭 끌어안고 잤겠지만, 옛 남자친구잖아. 등 돌리고 자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말이다.
연애 초기에 여자가 섹스 후 남자에게 등을 돌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남자에게 실망했거나, 잠을 편히 자고 싶거나. 첫 섹스 후 등을 돌렸다면? 잠을 편히 자고 싶어서 등을 돌렸을 리는 만무하다. 그 남자의 섹스에 실망했거나, 아니면 그 남자의 어떤 점에 서운했거나, 그에게 실망한 어떤 점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남자에게 등을 돌린 적이 있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 모텔에 간 B에게 나는 등을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B를 유혹한 것은 나였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B를 본 나는 그가 마음에 들어서 업무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저녁 살게요”라는 식상한 절차를 밟아 데이트에 성공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두 번째 데이트에서 모텔에 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그가 나를 모텔로 이끌었을 때, ‘아, B와는 연인이 아니라 섹스 파트너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와의 섹스가 끝난 후 나는 갑자기 B가 심드렁해졌다. 그의 섹스 테크닉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섹스까지 했으니, 이젠 뭘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B와 데이트를 하고 연인이 되려던 나는 예상치 못한 섹스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남자도 클럽에서 만난 콜라병 몸매의 여자와 섹스를 마친 후에 ‘아, 상상할 때가 좋았는데’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 않나. 그 순간 나는 그가 내어준 팔을 내 목에서 빼어내 그에게 돌려주고, B에게서 등을 돌렸다. B는 A처럼 “왜 등을 돌리고 자?”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너 진짜 좋았어?”라고 재차 물었다. 만약 내가 B와 연애를 했다면, 나는 그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데이트에서도 모텔로 직행한 그에게 나는 또 다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섹스 파트너와 하룻밤을 보낸 후 로맨틱한 대화를 즐길 만큼 뻔뻔하지는 않았으니까. B와의 섹스가 끝난 후 나는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모텔에서 뛰어나오는 유치한 행동은 어른이라면 지켜줘야 할 선이지 않은가. 그러니 등을 돌릴 수밖에. 그리고 B에게는 서둘러 변명했다. “팔베개는 불편하지 않아? 나는 결혼해도 침대는 따로 쓰면 좋을 것 같아. 30년이나 혼자 잤는데, 갑자기 누군가와 평생 같이 자려면 피곤할 것 같아”라고. B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섹스 후 등을 돌리는 내 나쁜 버릇을 고친 남자가 있었다. C는 섹스의 달인이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C와 충동적인 섹스를 하게 된 나는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김없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데 C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내 등을 애무했다. 그리고 이내 나를 뒤에서 안아주었고, 내 엉덩이를 자신의 은밀한 부분으로 터치했다. 그는 금세 흥분했고, 나 역시 다시금 성욕이 생겼다. 그날 밤 우리는 두 번째 섹스를 했다. 더 이상 그에게 등을 돌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30대가 되면 팔베개가 그리 편하지 않다는 사실쯤은 다 안다. 그런데도 남자가 팔을 내어주고, 여자가 그 팔을 베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런데 연애 감정이 없거나, 남자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겼거나, 둘의 관계가 혼란스러울 때, 여자는 팔베개는 건너뛰고, 등을 돌린다. 사실은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혹시 섹스를 하기도 전에 등 돌린 여자가 옆에 누워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모른 척한다면? 게다가 가슴에 키스를 퍼부으며 섹스를 시도한다면? 그녀는 속으로 ‘아니, 내가 섹스돌이야? 내가 기분이 어떻든 섹스만 하면 다냐고’라고 소리치고 있지는 않을까. 등 돌린 그녀를 보고 있다면, 멍하니 모른 척하지 말 것. 그리고 제대로 키스하기를 권한다. 뒤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