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주문으로 시작된 토착비리 척결 수사가 여권 인사들을 향하게 돼 당혹스런 상황이 연출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정기관의 수사망에 걸려드는 대상들이 하나같이 현 여권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수도권 지자체 비리와 관련해서는 여권 실세들의 이름까지 수사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등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수사의 칼날은 오히려 여당을 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토착비리 수사는 오는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은 그야말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몇 차례 지역토착형 비리 척결을 강조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토착 비리,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해 말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사이비언론 등 지역 토착세력의 구조적 비리 가능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척결 대책을 주문했다.
애초 이 대통령의 발언이 지역색과 정치색을 배제한 비리 근절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도 했지만 공교롭게도 토착비리 수사에 걸려드는 지자체장 등이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여권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여당 지자체장 일색의 경기도 일대 지방자치단체들은 거의 ‘쑥대밭’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군포 성남 시흥 안성 안산 오산 용인 파주 등 시장이나 시의회 관계자 혹은 소속공무원이 비리 혐의에 연루돼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지자체만도 여덟 군데에 이른다. 이들 지자체는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인사들이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시장 4명이 직접 검찰 조사까지 받은 상태다. 오산시장이 구속됐고 안성시장은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났다. 군포시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용인시장도 최근 인사 비리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계류 중이다.
이기하 오산시장은 아파트 시행업체에 10억 원을, 노재영 군포시장은 전·현직 비서를 통해 선거법 위반 재판비용 명목으로 2억 9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동희 안성시장의 경우 얼마 전 스테이트윌셔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에는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도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았다.
문제는 안성시의 경우처럼 지역토착형 비리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중앙정치인들까지도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가 중앙 정치무대로 확대될 경우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파급력은 선거 전체 판도를 뒤엎을 수 있을 만큼의 ‘메가톤급’이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관측이다. 특히 검찰은 경기도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이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대에 이르는 대형 사업인 만큼 인허가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 인사들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 국장은 1월 25일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직무와 관련돼 돈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수뢰 액수에 대해서는 미화 2만 달러와 한화 1400만 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건설업체 임원이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 로비를 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 중 일부가 한나라당 소속 아무개 의원에게까지 흘러들어갔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을 확인 중이다. 검찰은 건설사 내부 직원의 신빙성 있는 제보가 있었던 만큼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최근 국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각종 루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경기도 시흥시도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원지검은 최근 4500억 원대 국책사업인 ‘스틸랜드’ 사업과 관련해 한나라당 소속의 시흥시 의회 부의장 우 아무개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스틸랜드는 정부가 1997년부터 도심지역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영등포 문래, 대림동에 산재한 철재 상가를 이전하는 사업으로 지난 2008년 3월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스틸랜드는 약 22만m² 규모의 땅에 철재상가 20개 동, 상가 2개 동, 차량 2500여 대의 주차 공간 등 총 분양 규모가 4500억 원에 이르는 대형 단지 조성 사업이다. 우 씨는 시행사로부터 미술조각품 설치심의 통과 청탁 대가로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우 씨 역시 깃털에 불과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스틸랜드 시행사인 S 사의 대표이사 등 3명은 이미 거액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일요신문> 921호 보도).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비자금의 행방이다. 이들이 조성한 비자금 액수는 7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2007년에는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 125억 원을 포탈하기도 했다. 검찰은 거액의 비자금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처럼 여당 소속 지자체장이나 의회 관계자들이 잇따라 비리 혐의에 연루되어 검찰 수사를 받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지방 토착비리 척결을 강조하고 있는데 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잇따라 비리에 연루되어 당 지도부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며 여권 내 분위기를 설명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