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식객2> | ||
섹스하다가 잠들었다고? 에잇, 거짓말!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 아닌가? ‘제2의 <섹스 앤 더 시티>’를 표방한 미국 TV 시리즈 <캐시미어 마피아>에서 한 남자가 여자친구를 애무하다가 잠든다. 여자는 황당한 표정. 이것이 만약 실제였다면, 여자는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라고 충격 받았겠지만, 이런 일이 어디 흔한가. 영화 <귀없는 토끼>에서는 남자가 열심히 커닐링구스를 하고 있는데, 여자가 잠든다. 남자는 ‘내가 그렇게 못하나’라고 자책한 듯, 여자친구에게 고민을 상담한다. ‘이 여자가 잠든 이유가 뭐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섹스 중 잠드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험을 비춰보면 섹스 중 잠든 남자가 없었고, 나 역시 섹스 중 잠든 적이 없으니, 나는 단연코 섹스 중 어느 한쪽이 잠드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의 말은 달랐다. “섹스 중 잠든 적이 없다고? 애무하다가 잠든 적은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남자친구가 가슴을 파고들다가 애무도 없이 삽입하고, 피스톤 몇 번 하더니 피시식 끝나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기 볼 일이 끝나고 나면 혼자서 깊은 잠에 빠져버리잖아. 나는 이제 막 흥분했는데, 남자친구는 잠들었을 때만큼 허무할 때가 있을라고. 너, 진짜 이런 경험 없어? 있을걸!”이라며 콕 꼬집어 말하는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의 페니스를 입에 물고 있는 도중에 잠든 남자는 없었으나,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섹스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낸 후 잠에 빠져든 원 나이트 스탠드의 상대는 분명히 있었다.
이보다 더한 경우도 있다. 남자친구를 애무하던 중 그가 입으로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눈으로는 TV를 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친구 A의 고백. “남자친구가 <추노> 마니아거든. 얼마 전 TV를 보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에로틱해져서 그를 애무하다가 오럴 섹스를 했는데, 언뜻 보니 그가 TV를 보고 있는 거야. ‘야, 뭐해?’라고 화를 내려다가, 그랬다가는 분위기도 어색해지고 섹스가 중단될까봐 모른 척했지. 물론 나중에는 그도 흥분해서 제대로 불타오르긴 했지만, 아,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열받는다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내가 <추노>보다도 못한 거야?”라고 말했던 것. 섹스를 할 때마다 연애 초기처럼 후끈하게 불타오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섹스하는 도중에는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영화 <베사메무쵸>에서 40대 부부가 섹스 도중 나누는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지? 삽입을 하면서 “세금 냈어?”라는 말을 던지는 남편과 아내의 대화를 들으면서, ‘아, 나는 나중에 저런 부부가 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피스톤을 하면서 남자가 나에게 “너, 가스비는 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가스비 걱정 말고 지금 하시는 일이나 신경쓰시죠!”라고 면박을 줄지도 모르겠다.
물론 섹스 중 일상 대화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휴가 2박 3일 동안 남자친구와 알몸으로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는 선배 B는 “TV 보다가 섹스하고, 섹스하다가 잠들고, 배가 고프면 피자 시켜먹으면서 2박 3일 동안 섹스만 계속했어”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B의 말을 빌면, 섹스 중에 나누는 대화가 로맨틱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섹스가 즐거웠다는 것이다. 심지어 B는 “삽입 상태에서 영화 얘기를 하다가 그대로 잠든 적도 있다니까. 물론 잠에서 깨었을 때에는 그가 나를 더욱 뜨겁게 안았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섹스 중 세금 얘기는 하면 안 되고, 영화 얘기는 해도 되냐고? 물론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다만 여자는 섹스 중 마음을 여는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남자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섹스 중에는 ‘꼭 나누어야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밤을 뜨겁게 달구는 비결이 된다는 것. 커플의 섹스 라이프가 익숙해질수록 섹스 중 대화는 에로틱해져야만 섹스가 뜨거워진다는 것을 왜 모르나.
성의 없는 섹스는 안하는 것만 못하다. 섹스 도중 TV 시청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녀가 한참 애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어제 약속했던 거 했어?”라고 엉뚱한 질문을 한 적은 없는가? 충동적인 성욕 때문에 여자를 자극시켜놓고 막상 여자가 달아올랐을 때는 귀찮은 마음에 대충 섹스를 끝내버린 적은 없는가? 남자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여자는 상처받는다. 여자는 일주일에 3번씩 의무방어전을 하는 남자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밀도 높은 섹스를 공유할 수 있는 남자에게 더욱 깊이 빠져든다.
쇼트트랙 결승전이 있는 날 혹은 프리미어 리그에 박지성이 출장하는 날 TV 켜놓고 섹스하는 것보다 올림픽이 끝난 아침 또는 밤에 그녀를 뜨겁게 만족시키는 것이 여자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