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온그룹 건설사 (주)메가마크가 시공한 20층 규모 고급빌라. 분양가만 40억~60억 원에 이른다. 아래는 2006년 창고부지로 활용했을 당시 모습.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일요신문> 취재 결과 오리온그룹과 그룹핵심 임원 등이 서울 강남 청담동과 신사동 일대에서 수상한 부동산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청담동 부동산의 경우 오리온 주주들이 배임 의혹까지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어서 그룹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부동산 거래 과정에 오리온그룹 막후 실력자를 비롯해 가수 최성수 씨, 유명갤러리 대표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오리온그룹의 부동산 거래가 석연치 않다고 판단하고 관련 내용에 대해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그룹과 연관된 의문의 부동산 거래 속으로 들어가 봤다.
서울 강남 청담동 ×××-6(1261㎡. 이하 ‘6번지’) 및 ×××-34(494㎡. 이하 ‘34번지’)번지. 영동대교 남단에 위치한 이곳은 현재 시세로 3.3㎡당 5000만 원을 훌쩍 넘는 금싸라기 땅으로 분류되고 있다. 두 필지는 모두 지난 2006년까지 오리온그룹의 창고부지였다. 오리온그룹의 계열사인 (주)메가마크는 2008년 이곳에 약 20층짜리 고급빌라를 짓기 시작해 현재 거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빌라는 363㎡형으로 분양가만 40억~60억 원에 이른다. 입주를 앞둔 이 고급빌라가 지금 와서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단은 지난 2006년 7월 27일 오리온그룹이 창고 부지를 각각 다른 시행사에 넘기면서 시작된다. 1976년부터 40년이 넘게 이 땅을 창고부지로 활용해오던 오리온은 2006년 7월 27일 시행사인 A 사와 B 사에 매각했다. 오리온이 ‘6번지’를 A 사에 넘긴 가격은 115억 4000만 원. 3.3㎡당 약 3000만 원에 땅을 매각한 셈이다. ‘34번지’ 역시 비슷한 가격(3.3㎡당 3000만 원, 총액 44억 9000만 원)에 B 사에 넘겼다. 오리온은 두 필지 땅 1775㎡를 총 160억 원에 A 사와 B 사에 나눠 판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인근 땅(561㎡)은 3.3㎡당 약 5900만 원에 거래됐다는 점에 비쳐보면 엄청나게 싸게 넘겼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인근 부동산 업자는 “비교 대상의 두 부지가 모두 영동대로변에 있고 20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시세 차이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A 사 측은 오리온 창고 부지를 매입할 당시(2006년 7월)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여관 부지까지 함께 매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 여관의 주인은 “시행사가 3500만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서 팔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시기 여관 부지를 제외하고 오리온 창고 부지에 인접해 있는 부동산은 대부분 활발하게 거래됐다.
총 11명이 공동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던 땅 ×××-36번지 102.4㎡는 B 사가 2006년 5월부터 조금씩 지분을 사들여 같은 해 11월 20일 A 사에 팔았다. 개인소유였던 ×××-25번지 205㎡ 역시 2006년 7월 A 사가 24억 원(3.3㎡당 3800만 원)에 사들였다. ×××-26번지 203㎡ 역시 A 사가 최종적으로 매입했지만 이 과정에도 B 사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25, 26, 36번지 등 세 필지는 2006년 11월 23일 ‘6번지’에 합병됐고 이 부지는 모두 A 사의 소유로 정리가 됐다.
A 사는 오리온의 창고 부지이자 빌라 부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6번지’ 땅을 3.3㎡당 3000만 원에, 나머지 개인 소유의 땅들은 3.3㎡당 3800만 원에 사들였다. A 사는 이 땅을 2008년 2월 23일 C 사에 시행권과 함께 171억 4000만 원에 팔았다.
이후 공동시행사가 된 B 사와 C 사는 SC제일은행으로부터 650억 원가량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사업수익성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자금을 조성해 빌라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시공권은 오리온그룹 계열사인 메가마크에 넘어갔다.
결국 오리온그룹 소유의 청담동 ‘6번지’ ‘34번지’와 인근 개인 소유 땅을 A 사와 B 사가 매입한 후 시행권은 B 사와 C 사로, 시공은 오리온그룹에서 맡아 빌라 건축을 하게 되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오리온 그룹이 당시 왜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땅을 매각했느냐다. 기사 초반에 언급했듯이 당시 이 지역 부동산 시세는 3.3㎡당 5000만 원을 웃돌았다는 것이 부동산 중개인들의 설명이다. 오리온은 이 땅을 3.3㎡당 불과 3000만 원에 팔았다. 3.3㎡당 5000만 원으로만 계산해 봐도 약 265억 원(5000만 원 × 531평)인데, 여기에 훨씬 못 미치는 160억 원에 판 것이다. 이는 주주들 입장에서는 배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6번지’와 합병된 나머지 토지들도 3800만 원선에서 거래됐기 때문에 오리온이 입은 손해가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토지들은 영동도로변이 아닌 뒤쪽 이면도로에 위치한 땅이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거래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오리온그룹의 건설사인 메가마크의 한 관계자는 “개인이 가지고 있던 부지는 규모가 작았고 회사 측에서 가지고 있던 부지는 규모가 컸는데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규모가 큰 토지가 더 싸게 거래된다”고 설명한 뒤 3.3㎡당 5900만 원에 팔린 인근 땅에 대해선 “그 땅은 상가 부지로 주유소가 있던 자리로 곧바로 영동대로로 진입할 수 있는 이점까지 있어 땅값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주변 토지 소유주들이나 업자들이 말하는 금액이 훨씬 높은 것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호가’이기 때문에 실제 거래금액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이화경 사장, 가수 최성수, 임원 J 씨 | ||
시행사가 매입한 이면도로 필지 XXX-25 공시지가는 3.3㎡ 당 1673만 원으로 3800만 원에 팔렸다.
2006년 12월 3.3㎡ 당 5900만 원에 거래됐다는 인근 부지의 공시지가는 평당 2772만 원이다. 즉 공시지가를 따져봤을 때 오리온 부지는 비교대상이 되는 인근 부지의 80% 정도 가격이다. 하지만 실거래가는 이 부지의 50% 정도에 거래된 셈이다.
토지매입 과정에 참여한 A 사와 B 사와 관련해서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눈에 띈다. 먼저 A 사가 공교롭게도 땅을 산 날짜에 새로 생긴 회사라는 점이다. 원래 건축사무소였던 이 회사는 토지를 매입한 2006년 7월 27일 회사 이름을 바꾸고 사업목적을 설계에서 건축으로 바꿔 등기했다. 동시에 자본금도 1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늘렸다. 등기상에는 단순히 회사이름만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A 사가 C 사에 토지를 넘긴 것도 사실상 헐값 매각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A 사는 다른 필지와 합병되어 규모가 커진 ‘6번지’ 땅 1669㎡를 2008년 2월 3.3㎡당 3400만 원에 C 사에 넘겼다. 게다가 A사는 시행권까지 함께 넘겼다.
A 사가 시행을 하기 위해 토지를 매입했다가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 토지를 되팔았다 하더라도 시세에 한참 못 미친 가격에 판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재 A 사는 사실상 법인을 폐쇄했다.
메가마크 관계자는 “A사가 어떻게 해서 오리온과 조인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가 문제 등 사업상의 이유로 필지를 나누고 시행사를 두 곳으로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토지 매입과정에서부터 참여해 공동시행까지 하고 있는 B 사 역시 이번 사업을 하기 전까지 건강식품 도·소매업을 하던 회사였다. 창고 인근 부지 매입을 하던 2006년 5월에 사업목적을 건설업 등으로 바꿔 등기했다.
또한 B 사는 사실상 오리온그룹과 특수 관계의 회사라고 볼 수 있다. 이 회사의 대주주 중 한 명은 가수 최성수 씨(지분 26%)다. 최 씨의 부인 박 아무개 씨는 오리온그룹 건설사 메가마크가 동작구 흑석동 인근에 짓고 있는 고급 빌라의 시행사인 D사의 대표다. 이 회사의 재무재표에 따르면 메가마크로부터 79억 원의 돈을 빌렸다. D 사는 최성수 씨에게는 20억 정도를 대여해주기도 했다. 이 빌라는 결혼설이 나돌고 있는 장동건-고소영 커플이 신혼집으로 쓰기 위해 마련했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장동건 씨가 빌라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최성수 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 씨와 오리온그룹의 접점은 청담동 땅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최 씨와 오리온그룹 임원의 이름이 나오는 또 하나의 부동산을 발견했다. 신사동 도산공원 앞에 위치해 있는 △△△-23번지(290㎡)가 바로 그 곳이다. 역시 평당 4000만 원에 육박하는 금싸라기 땅이다. 최 씨는 오리온이 창고 부지를 팔았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이 부지의 지분 절반을 매입했다. 나머지 절반 부지를 매입한 사람은 유명갤러리 대표 H 씨다. 두 사람은 얼마 후 이 부지를 오리온그룹 임원인 J 씨에게 팔았다. 오리온그룹 내부에서 J 씨는 막후 실력자로 통하며, 특히 오너 일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 씨는 메가마크의 등기 임원이기도 하다. 주변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J 씨가 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세입자들과 적지 않은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J 씨는 청담동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도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오리온그룹 관계자는 “임원 개인의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 일일이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가수 최 씨의 아내 박 씨는 오리온그룹 이화경 사장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이며 두 사람의 접점에는 갤러리 대표 H 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에는 이화경 사장의 언니인 이혜경 씨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갤러리에는 다른 재벌가 안주인들도 여러 명 참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 씨가 아니더라도 청담동 부동산과 관련 A 사와 B 사 그리고 메가마크(오리온)가 밀접하게 연관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A 사가 땅을 매입해 시행권과 시공권을 B 사와 메가마크에 넘긴 적이 있으며, 이들은 금전적인 거래도 했다. B 사는 2008년 메가마크와 A 사로부터 각각 6억 원과 2억 8000만 원의 돈을 빌렸다.
이처럼 오리온그룹을 정점으로 복잡하게 얽힌 부동산 거래에 대해 검찰은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헐값 부동산 매매 등 돈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이면 거래는 없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기자는 B 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표이사에게 몇 차례 전화하고 메모도 남겼으나 끝내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