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골프 돌풍과 함께 수년 전부터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스크린골프장이 골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힘입어 시내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골프의 대중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 못지 않게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엽기적인 수법을 동원해 사기골프를 벌인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부산진경찰서는 2월 24일 스크린골프장에서 내기골프 상대에게 몰래 마약을 먹인 뒤 거액을 가로챈 혐의(마약류관리법위반 등)로 우 아무개 씨(47)를 구속하고 그 일당 5명을 불구속입건했다.
내기 골프는 기본이고 마약에 사기골프까지 등장하고 있는 스크린골프장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여다 봤다.
특정 직업이 없는 우 씨 일당은 한 번에 큰돈을 만지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던 중 우연히 시내 곳곳에서 성황 중인 스크린 골프장을 떠올렸다. 평소 스크린골프장을 배회하며 싼 값에 골프를 치던 중 일부 스크린골프장에서 내기골프가 성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 씨 일당이 계획한 것은 정당한 내기를 가장한 사기골프였다. 부산 시내의 스크린골프장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우 씨 일당은 연제구에 소재한 A 스크린 골프장에서 제법 큰 판돈이 걸린 내기골프가 자주 이뤄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범행 대상을 정하는 일이었다. 우 씨 일당은 자연스럽게 접근해 내기골프를 제안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골프실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평소 내기골프를 즐겨하는 사람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물색 끝에 우 씨 일당이 타깃으로 잡은 사람은 A 스크린골프장 단골로 안면이 있던 신 아무개 씨(61)였다. 우 씨 등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신 씨는 뛰어난 골프실력을 갖고 있는 골프 마니아로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신 씨가 A 스크린골프장에 온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한 일당은 이날 일찌감치 골프장을 찾았다. 예상대로 신 씨가 골프장에 들어서자 우 씨 일당은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며 접근, 신 씨에게 “심심한데 내기 골프나 한번 칩시다”라고 자연스럽게 제안했다. 경기방식은 매홀 성적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식이었는데 타당 20만 원을 걸었다.
평소 골프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신 씨로서는 이들과의 내기 골프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신 씨는 스크린골프장을 직접 운영한 적이 있어 일반인들보다 풍부한 게임 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사기골프’를 목적으로 접근한 우 씨 일당의 검은 속내를 알 리 없었던 신 씨는 자신의 실력으로는 돈을 잃을 리 없다고 판단하고 이들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이들은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된 직후부터 신 씨에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시야가 흐려지면서 극도의 어지럼증이 느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컨디션’ 탓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증세는 더욱 악화됐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최악의 상황에서 신 씨는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컨디션을 핑계로 중도에 게임 중단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 씨는 기를 쓰고 골프채를 휘둘렀지만 결국 내기골프를 시작한 지 2시간여 만에 1000만 원을 잃고 말았다. 신 씨로서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거금을 잃은 것보다 더욱 신 씨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따로 있었다. 내기골프가 끝난 후에도 몸에 이상반응이 계속된 것이었다. 다음날에도 이상한 증세가 이어지자 신 씨는 급기야 병원을 찾았고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듣게 된다. “몸에 마약성분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어제의 내기골프 사건과 맞물려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신 씨는 즉시 경찰서를 찾아갔고 소변검사결과 필로폰 성분 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제서야 신 씨는 처음부터 우 씨 일당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각해보니 게임 시작 전 이들이 건넨 커피가 문제였다.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마치 약에 취한 듯한 반응을 보인 것은 우 씨가 커피에 마약을 탔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신 씨는 우 씨 등 6명을 경찰에 신고했고, 탐문과 잠복수사 끝에 일당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 조사결과 우 씨 일당은 돈을 가로챌 목적으로 내기골프 상대자에게 필로폰이 섞인 음료를 건네 마시게 한 뒤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해 거액의 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조사결과 일당 중 한 명인 김 아무개 씨(39)는 주점에서 일하는 B 씨(22)에게 100만 원을 주고 필로폰을 같이 투약할 것을 제의해 상습투약케 만드는 등 회사원과 가정주부, 대학생 등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범행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신 씨의 신고가 있은 후 경찰은 우 씨 일당이 스크린골프장을 무대로 또 다른 사기골프를 벌일 것으로 판단하고 탐문 수사를 진행했다. 특히 일당이 ‘마약’을 범행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한 경찰은 마약을 미끼로 한 신종범행들에 대한 종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우 씨 일당은 다각적인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하는 여대생이 있으며 같이 마약을 투약하거나 판매하는 일당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덜미가 잡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스크린골프장을 둘러싼 폐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유독 내기를 좋아하는 골프마니아의 특성과 맞아떨어지면서 스크린골프장은 과거 ‘노래방’을 방불케할 만큼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스크린골프장에서는 ‘술’과 ‘여자’가 옵션으로 등장하는 등 퇴폐·변종 업소로 변질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스크린골프장 마니아들에 따르면 이곳에서 내기도박은 으레 벌어지는 일이다. 이들은 “룸에서 치는 골프는 거의 내기라고 보면 된다. 사람들이 돈을 걸지 않으면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라운딩에서 돈을 잃은 뒤 본전을 만회하기 위해 2차로 스크린골프장을 찾는 이들도 상당수다. 골프장 업주에 따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타수당 거는 돈은 적게는 2000원에서 1만 원 정도선이다. 하지만 일부 ‘꾼’들은 한 타에 10만 원 이상의 판돈을 걸기도 한다. 이쯤되면 18홀을 도는 동안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날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수원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C 씨는 “일부 업소에서는 매출을 올리고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분위기를 띄워주는 여성도우미를 대기시켜놓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성 도우미들은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손님들의 술시중을 들고 적당한 때마다 ‘나이스샷’을 외치며 흥을 돋운다. 이들은 손님의 인심에 따라 판돈의 일부를 챙기기도 하는데 합의에 따라 일부는 2차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C 씨의 얘기다.
평소 스크린골프장을 즐겨 찾는다는 D 씨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스크린골프장에는 룸에 들어가자마자 술과 안주 주문을 받고 아가씨 합석 여부를 묻는 곳이 많다”고 증언했다.
연휴 라운딩을 마치고 스크린골프장을 찾곤 한다는 E 씨 역시 “골프만 치기 위해 이 곳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음주와 흡연을 하면서 골프를 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동료나 친구들과 자주 찾고 있는데 각각 아가씨를 끼고 버디를 할 때마다 파트너 아가씨가 옷을 벗거나 입에서 입으로 얼음을 전달하는 게임, 폭탄주를 마시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스크린골프장에서 ‘은밀한’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이유는 18홀 한 게임을 2만 원 정도 선에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주와 게임 등을 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는 원스톱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공간의 밀폐성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 관계자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신종도박과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밀폐된 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할 경우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