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로마올림픽에 온 모나코 레니에 대공과 그레이스 켈리 왕비. 연합뉴스 | ||
모나코는 지중해 연안의 산비탈에 놓여있는 도시국가로 수도 몬테카를로가 전부다(의외로 아프리카의 모로코와 헷갈리는 사람들도 많다). 모나코에 가기 위해서는 국제영화제로 유명한 칸 인근의 니스 공항을 가, 여기에서 자동차로 40분, 헬리콥터로 10분 이동해야 한다. 육로는 바다를 끼고 많은 동네를 지나가는 꼬부랑 산길이 유일했다. 이 험한 길에서 바로 그레이스 켈리 왕비가 자동차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1982년). 이 충격의 자동차 사고 후에 산길 중간에 고속도로가 건설됐다.
레니에 3세는 바로 이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남편으로 유명하다. 켈리 왕비와의 슬하에 알베르 공자와 카롤린 왕녀, 스테파니 왕녀를 두었다. 왕족 전체가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특히 레니에 대공과 켈리의 결혼식(1956년)은 ‘세기의 결혼식’으로 큰 화제를 뿌렸다.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았는지 그레이스 켈리 왕비가 망해가는 모나코를 살렸다는 표현까지 나오기도 했다. 직접 들은 얘기인데 레니에 대공은 칸 영화제에서 켈리를 만났고, 1년 후 직접 필라델피아의 켈리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물론 켈리 집안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모나코는 인구 3만 명 정도의 소국으로 그 당시 국무장관은 프랑스 외교부의 추천을 받아 임명했으며, 경호관도 프랑스에서 많이 차출했다(총 1000명). 카지노, 관광, 호텔, 부동산 등으로 먹고 사는 나라로 국제회의, 국제기구, 국제박람회, 국제스포츠행사 등을 많이 유치하고 또 그만큼 주최 측에게 여러 특전을 베푸는 정책을 쓰고 있다. UN 가입은 1993년이고, 2005년 조약개정으로 독자외교관계를 할 수 있게 됐다.
모나코는 작지만 문화적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세계적인 축구팀(최근 한국의 국가대표 박주영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AS 모나코), 요트와 자동차경주, 발레단, 오케스트라 등이 자랑거리다. 일년 내내 국제회의, 박람회, 갈라쇼가 끊임없이 열린다.
참고로 국제박람회 본부가 파리에 있는데 수년 전 여수가 유치운동을 한 바 있다. 당시 사무총장이 모나코의 노가(Noga) 씨였다. 노가는 ‘스포츠텔’의 사무총장이기도 했기에 스포츠텔 회장으로서 여수의 승리 가능성을 슬쩍 물어봤더니 “안 될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들떠있는 한국 여론과는 사뭇 달랐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로 여수는 그 때 중국 상하이에 패했고, 두 번째 도전에서 유치에 성공했다.
GAISF가 90개의 올림픽 동·하계 승인종목과 기타종목을 거느리는 국제 스포츠기구였기에 레니에 대공은 기꺼이 사무실 등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관련행사를 만들었다. ‘스포츠텔’은 스포츠영화제이고 박람회였다. 축구황제 펠레 등 많은 스타가 참석해서 성황을 이뤘다. 그런 스타들은 하나하나 매력이 있고 사람을 끈다. 내가 주최자였지만 여자들의 인기는 ‘젊은’ 알베르 공에게로 몰렸다. 만찬 때도 여자들이 계속 알베르 공자만 찾아서 사진 찍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스포츠텔에는 유로스포츠 등 방송도 참여했다.
이런 행사들을 통해서 모나코의 왕실과 깊은 친분을 쌓아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레이스 켈리의 집안도 필라델피아의 명문가였다. 켈리 왕비의 친오빠(Jack Kelly)는 미국올림픽위원장(LA 당시)을 지냈고, 1977년 제3회 시카고 세계태권도대회에도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그 당시는 우리 태권도대회에 저명인사는 안 올 때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그 좁은 나의 여의도 서울아파트에도 와서 한국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배가 불러서 다 못 먹을 판인데도 참고 끝까지 먹은 후 비행장으로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 후에 조깅하다가 급사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앞서 1982년 켈리 왕비도 카롤린 공주와 운전 중에 자동차가 고갯길에서 굴러 사망했으니 남매에게 잇달아 불운이 닥쳤다고 할 수 있다. 알베르 공자는 1985년에 IOC 위원이 되었다.
늘 조그만 모나코에 환하게 빛을 주던 그레이스 켈리 왕비가 없어지니 모나코가 빛을 잃어 어두운 인상을 주었다. 켈리 왕비는 두 딸 카롤린과 스테파니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이 왕가는 염문이 끊이질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 레니에 대공과 필자가 모나코 왕궁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 ||
그런데 IOC를 비난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GAISF는 순수한 스포츠 진흥에 전념하는 기구다. 사마란치는 곧 GAISF를 껍데기만 남도록 만들기 위해 하계연맹(네비올로), 동계연맹(호들러), 기타연맹으로 쪼개고 켈러와 GAISF 죽이기에 나섰다. 다행히도 필자가 GAISF 회장이 된 후에는 IOC와 GAISF는 좋은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게 됐다. GAISF가 월드게임을 창설했는데 IOC가 이를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나코는 국제스포츠에서도 중요한 무대였고, 굵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레니에와 알베르의 역할이 컸다.
나는 모나코에서 훈장을 2개나 받았고, 스포츠텔 때 유로스포츠 방송사로부터 대상도 받았다. 그만큼 모나코와 가까웠던 것이다. GAISF 총회 개회식에는 레니에 대공과 알베르 공이 반드시 참석해(국무장관 대동) 환영사를 했고, 만찬에 참석하여 무게를 실어 주었다.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사망 후에는 가끔 궁의 정원에서 펼쳐진 리셉션에 카롤린 공주가 나오기도 했다. 카롤린은 UN 공사를 맡기도 했다. 레니에 대공은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레니에 대공과 알베르 공 모두 IOC 위원이었기에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모나코에서 공식행사가 열릴 때 나는 집행위원들을 대동하고 궁으로 레니에 대공이나 알베르 공을 방문하는 것이 정례였다.
나는 레니에 대공을 자주 만나 세계정치, IOC, 올림픽경기 등을 주제로 한 시간씩 논의하는 기쁨을 가졌다. 그는 화제가 무궁무진했고, 세계정세도 숙지하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레니에 대공은 주로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레니에 대공은 왕족답게 무게가 있었고, 겸손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인격적으로 고매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 켈리 왕비 사망 후에는 궁에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이 느껴졌고, 심장병으로 가끔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곤 했는데 지난 2005년 레니에 대공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모나코 왕궁에서 IOC위원들 모임(위 사진)과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총회에 참석한 알베르 왕자, 김운용 GAISF 회장, 사마란치. | ||
네비올로도 육상재단과 육상연맹을 모나코로 이전시켰다. 세금이 영국 런던보다 덜 까다롭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나코는 세금이 없다. GAISF 총회가 열릴 때는 전 세계 90개 국제스포츠연맹 회장단이 모두 참석하고 사마란치 IOC 위원장과 IOC 위원들도 많이 왔다. 스포츠마케팅도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 아디다스의 다슬러(Dassler) 사장, 영국의 웨스트 낼리와 함께 GAISF가 시작한 것이다. GAISF가 주축이 돼 ‘스포츠어코드(Sports Accord)’를 만들어 국제연맹이 수입을 좀 올리게 했는데 내가 물러난 후에는 로게의 직계인 패아부르겐 부회장이 GAISF를 없애고 스포츠어코드로 변질시켰다. 패아부르겐은 사마란치 권고로 부회장을 시켰는데 로게로 전향했다. 스포츠어코드의 본부도 스위스 로잔으로 옮겼다. 모나코와의 긴 인연도 끝난 것이다. 이에 알베르 공이 항의편지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여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GAISF 회장은 국제연맹 회장 중에서 선출되는데 패아부르겐은 선거에서 져 국제사이클연맹 회장에서 물러났다. 이에 로잔 사람들과 결탁해 GAISF를 없애버린 것이다. GAISF는 각 스포츠 종목의 인사가 밑바닥(Grass root)에서 올라와 수장이 되고, 또 종목 상호간에 스포츠발전을 위해 협력하던 단체다. 올림픽 종목뿐 아니라 비올림픽 종목의 국제대회인 월드게임(모나코에서 탄생)도 주최했다. 이처럼 긴 역사와 남다른 의미를 가진 GAISF였는데 그만 순간의 정치논리에 희생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나코 성 안의 알베르 공 사무실은 부왕인 레니에 대공의 사무실보다는 아주 작았다. 알베르 공 사무실은 늘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비서 말에 의하면 너무 많아 못 보는 것이 많다고 했다. 시내에서 몇 사람이 저녁식사를 할 때 알베르 공은 유명모델 등 여자친구도 데리고 왔다. 폴란드의 크바시니예프스키(Kwaznieuski) 대통령도 GAISF에 축사를 하러 와서 알베르 공과 같이 지낸 바 있다.
어머니,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후 나라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은 알베르 공이 그동안 닦아온 지도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모나코를 운영할지 지켜볼 일이다.
전 IOC 수석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