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김승연 한화 회장(왼쪽)과 최태원 SK 회장.
SK그룹은 최근 사장단 인사에서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의 사장을 갈아치울 정도로 비상경영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실적부진에다 투자 결정 등 ‘속도경영’이 여의치 않은 게 그룹 수장 공백의 가장 큰 애로라고 토로하고 있다.
SK그룹은 청와대와의 마음을 사려는 정성도 많이 들였다. 지난 11월 청와대가 주도하는 지역창조경제 거점의 대기업 연계전략에 참여해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에서 박 대통령에게 벤처기업 육성 방안을 설명해 흡족한 반응을 얻어냈다. 지난 7일에는 이곳에 입주한 벤처기업 10개 중에 5곳이 국내외에서 13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는 희소식도 전했다. 지난 5월엔 최 회장이 지난해 받은 보수 301억 원 전액을 사회에 환원했다. 최 회장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난 11월엔 차녀 민정 씨가 ‘재벌가의 딸’로는 처음으로 해군에 지원, 현역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별사면엔 최 회장뿐만 아니라 집행유예 상태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속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구본상 LIG 넥스원 부회장,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보석으로 풀려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기업비리 혐의로 재판중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11월 사회봉사 300시간을 모두 채우고 사실상 경영에 복귀했다. 지난 2012년 8월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된 지 2년여 만이다. 삼성그룹과 2조 원 규모의 계열사 인수, 그룹 내 태양광 사업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 간 합병,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 현장 방문 등 활발한 경영활동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행위는 법적 지위가 아니라 상징적 지위인 그룹 회장직과 대주주 자격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행법상 화약류 제조사인 ㈜한화의 대표이사로 복귀하려면 집행유예 기간 5년을 모두 마친 후 1년을 더 채워야 한다. 김 회장은 지난 2007년에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회장 등과 함께 8·15 특별사면으로 대표이사에 복귀한 바 있다. 김 회장으로선 ‘어게인 2008’을 외치고 싶은 심정인 셈이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 지난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252억 원을 선고받았고,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형이 확정되지 않아 연말 사면 대상이 아니다. 다만 기업인 사면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내년 형 확정 이후 사면 기대를 이어갈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기업인에 대한 특사는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운동 당시 “특별사면권은 엄격하게 제한된 범위에서 행사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비리 기업인에 대한 ‘무관용원칙’이 공약처럼 인식돼왔다. 올해 1월 생계형 범죄자에 대한 설 특사만 한 차례 단행했다.
하지만 올 들어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들의 투자확대를 주문하면서 재계의 협조가 절실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지난 9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라면 (기업인들의 사면 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조건부 사면론을 제기하면서 기업들의 사면 단행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재계는 한 목소리로 “기업인이라고 해서 더 가혹한 처우를 받은 것은 역차별”이라며 사면대상에 기업들도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사면권은 고도의 정치행위인 만큼 예단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면은 법원이 선고한 형의 효력 자체를 무효화하는 행위인 만큼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된다”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연말 정국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무리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더라도 사면 카드를 쉽게 꺼내들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논란과 이에 따른 여론 향배가 큰 변수라는 얘기다. 지난 9월 황 장관이 기업인 사면설을 제기했을 때도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합법화하려는 망발”이라고 비판했다.
사면은 법무장관의 상신으로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 아직까진 법무부에서 특사 상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현안으로 부상한 이슈들이 많아 특사를 거론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정치상황이 꼬여 있더라도 기업들이 실적 부진 등으로 침체돼 있고, 내년 경기회복 전망도 어두운 상황에서 활력을 불어넣을 모멘텀을 찾아줘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며 “이런 점에서 기업인에 대한 특사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라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