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한국석유공사
최근 화학과 정유주의 주가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다. 석유화학 대장주 LG화학의 9월 말 현재 순자산은 12조 원이지만, 시가총액은 간신히 13조 원에 턱걸이했다. 시총이 순자산만 못한 ‘잠재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처지다. 시장과 그룹 내에서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 화학주 시총 1위를 내줬고, LG그룹 내 시총 1위 자리도 LG디스플레이가 1조 원 미만으로 바짝 추격했다.
정유 대장주 SK이노베이션도 딱한 처지가 됐다. 순자산이 16조 5000억 원이 넘지만 시총은 그 절반인 8조 원도 안 된다. 현 주가 수준은 2008년 가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와 거의 같다. 그룹의 모태 기업이지만 그룹 내 시총 순위는 SK텔레콤, SK C&C, SK㈜에 이어 다섯 번째로까지 추락했다.
GS칼텍스는 비상장이어서 주가를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모기업 ㈜GS 주가는 홈쇼핑 등이 ‘방패’ 역할을 해준 덕분에 2008년 가을 리먼 사태 수준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대규모 투자부담을 안고 있는 S-오일의 주가는 중국 특수가 시작되기 전인 2003년 초의 수준까지 밀려있다.
화학주의 부진은 실적 탓이다. 국제유가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비싼 값에 도입했던 석유로 제품을 만들어봐야 싼 값에 넘길 수밖에 없어서다. 원재료 도입가와 제품 판매가의 차이만큼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유가가 반등한다면? 도입가와 제품 판매가의 차이만큼 이익을 볼 수 있다.
대신증권 오승훈 연구원은 “고갈 자원으로서 유가의 특징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저유가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며 “반전의 계기가 언제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지급준비율 인하와 유럽 수요개선 신호가 유가의 바닥 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가 반등론의 논리는 이렇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가장 타격을 받는 지역은 오일샌드, 미국 셰일오일, 브라질 심해유전 등이 될 것이다. 당장 생산이 줄지 않겠지만 신규 투자가 지연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급증하는 2015년까지는 공급과잉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이 정체되면서 감소세로 돌아설 수 있다. 또 2008년 유가급락은 경제지표 급락을 동반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제지표와 유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수요 회복세가 느리지만 유가의 급락을 가져올 만한 상황은 아니다. 신한금융투자 김지운 연구원도 “유가는 장기적으로 미국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익이 보장되는 동시에 경쟁국인 러시아에 부담을 안길 수 있는 배럴당 70달러 수준에서 움직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고 예상했다.
종합하면 당장은 아니지만 1년 정도 참으면 화학·정유주가 다시 반등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던 증권주들이 저금리와 경기부양 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30% 급반등한 것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다만 1년 후쯤 유가가 반등할 경우 화학·정유주에는 긍정적일 수 있어도 우리 경제 전반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경기침체와 가계부채 문제가 여전한데다, 주요 산업의 글로벌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유가가 올라 원자재 가격 부담과 물가상승 부담까지 겹쳐진다면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대우증권 최진호 연구원은 “저유가는 수입물가의 하락을 유발해 교역량 증대에 기여한다. 특히 선진국들의 수입물가 하락으로 수입물량이 증대되면, 이는 신흥국들의 수출 수요 증대로 이어져 신흥국 생산경기가 개선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즉 이 반대의 경우 우리나라에는 자칫 상당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