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이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 근절 발언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적으로 연관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고, 청와대 측도 청와대를 사칭한 단순 사기 사건이라고 주장해 사건은 일단락됐다. 당사자들이 모두 구속되고 청와대와 검찰이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하면서 언론도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 내부에서 이 사건과 관련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 사건이 단순 사기 사건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도 영관급 장교와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 골프장 인·허가와 한 육군 장교의 진급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기 사건이 확전되는 내막을 쫓아가봤다.
이사건은 지난 2007년 8월경 K 개발업체가 경기도 용인지역 일대에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골프장 건설에 가장 큰 걸림돌은 사업부지 인근에 군부대 탄약고가 있어 골프장 인·허가가 쉽게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K 개발업체 대표인 권 아무개 씨와 이 아무개 씨는 당시 국방부 탄약과장으로 근무하던 신 아무개 당시 대령에게 ‘탄약고 인근지역이라도 골프장 건설이 가능하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의 청탁을 받은 신 대령은 탄약고 인근 지역에 골프장과 야구장 등 체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와 이 씨 등은 신 대령에게 보은할 기회를 찾았다. 그러던 중 2009년 신 대령은 장군 승진 대상자에 올랐다. 이들은 신 대령의 승진을 돕기 위해 관련 공무원들에게 청탁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이 씨는 지인으로부터 식품업체 대표인 채 아무개 씨를 소개받았다. 채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고려대 연구교수 A 씨가 청와대 인사 담당 공무원 등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A 씨에게 신 대령이 진급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A 씨는 현 정부 고위층의 도움으로 고려대 연구교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업체 대표인 이 씨는 “신 대령이 진급할 수 있도록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해달라”며 채 씨에게 4차례에 걸쳐 총 6000만 원의 뇌물을 전달했다. 이 씨는 이와는 별개로 채 씨 몫으로 2000만 원의 돈을 건넸다. 채 씨는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해달라고 받은 돈 중 4000만 원을 연구교수 A 씨에게 건넸다. 검찰은 지난 2월 이 같은 범죄 사실들에 대한 자체 첩보를 입수해 A 씨 및 채 씨 등의 계좌를 추적하는 동시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결국 채 씨와 A 씨는 각각 3월 8일과 11일 구속됐다.
그러나 검찰은 최초 뇌물공여자인 권 씨와 이 씨,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 연루 여부 등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말 이외엔 말을 아끼고 있다. 배달사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사건이 터지자 “자체적으로 파악한 결과 이 사건이 청와대 내부인사와 연결된 점은 없었다”며 “청와대를 사칭한 사기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의 발표나 검찰의 반응과는 달리 이번 사건을 단순 사기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특수부에 배당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단순 사기사건일 경우 20억 원 이상은 조사부에, 20억 원 미만은 형사부에 배당되기 때문이다. 검찰 스스로 이번 사건을 단순 사기사건으로 판단하지 않았음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확인 결과 신 대령은 현재 국방부 검찰단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도 신 대령에 대해선 구속영장에서 인허가에 적극적이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채 씨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신 대령이 이를(도와달라는 개발업체의 부탁) 승낙한 다음, 탄약고 인근 지역에 골프장, 야구장 등 체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적시돼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은 로비 대상자였던 신 대령과 청와대 행정관 중 적어도 신 대령에 대해서는 단순 사기가 아닌 성공한 로비였다는 의미다.
국방부 탄약과장이었던 신 대령은 지난해 10월 인사에서 준장으로 진급했다. 인사를 전후해 연구교수 A 씨는 신 대령과 수차례 통화하고 직접 만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시에 신 대령이 준장 진급자로 확정된 다음 날인 10월 28일 국방부는 군사시설보호구역내에 체육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군사시설 관리 이전 효율화 방안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통해 발표했다.
당시 위원회에서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병원, 목욕탕, 도서관, 골프장 등 군 편의시설 등을 군부대 외곽에 배치하여 민·군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K 투자개발이 사업부지 인근에 위치한 군부대 탄약고로 인해 받을 수 없던 인허가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신 대령은 진급 후 탄약고와 관련된 인허가 문제를 실무 처리하는 탄약사령관으로 옮겨갔다.
군 내부에서는 신 대령이 굳이 청탁을 하지 않아도 진급이 확정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금전거래 등에 연루됐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한 군 검찰 관계자는 지난 3월 17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신 대령은 군내에서 여러 면에서 평가가 좋았던 사람”이라며 “단순 사기 사건에 연루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군 내부의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신 대령이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깊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로비의 또 다른 최종 목적지라 할 수 있었던 청와대 행정관의 연루 여부는 과연 사실일까. 현재까지 이 부분에 대해서 수사진은 함구를, 청와대는 부인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과 청와대 내부에서는 실제 행정관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검찰에서는 이번 개발업체 쪽의 로비 결과가 성공한 로비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와대도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수사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키는 개발업체 대표인 권 씨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 씨는 골프장 건설을 추진했던 개발업체의 실질적인 사주이기 때문이다. 권 씨는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현재는 S 석유회사를 비롯해 몇 개의 사업체를 가진 중견 기업인이다. 권 씨는 정치권에도 상당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대표였던 이 씨는 권 씨가 고용한 사람이다. 권 씨는 이 씨가 육사 출신에다 군 내부에 적지 않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를 고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2월 권 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지만 권 씨가 사건에 직접 연루된 혐의는 아직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인허가를 둘러싼 브로커들의 로비 사건 불똥이 과연 청와대로 튈 수 있을지 검찰의 수사 추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