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뒤집힌 채 선체 일부만 수면 위에 드러낸 천안함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사진제공=옹진군청 | ||
침몰한 ‘천안함’은 1200톤급 초계함이다. 초계함이란 적의 습격에 대비해 해상을 경계하는 군함. 우리 해군은 모두 3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1989년 취역한 천안함은 전장 88m에 전폭 10m, 최고속력은 시속 약 57㎞, 항속거리는 7200㎞로 초계함 중에서도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기종이다.
길이가 무려 88m에 이르는 군함이 무슨 이유로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을까. 합동참모본부와 생존자, 그리고 백령도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단 큰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3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 천안함의 선미 부분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발생한 뒤 20분 만에 함정 전 구역의 60%가 침수됐다고 설명했다.
천안함의 최원일 함장(중령)도 구조 다음날인 27일 실종자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26일 밤 9 시 25분쯤 함장실에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충돌음과 함께 선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폭발과 동시에 내 몸이 50㎝가량 날아올랐다. 그리고 나서 책상 밑에 깔렸다. 이후 발전통신 모든 교신수단이 두절됐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그는 또한 “순식간에 반파돼 배 반쪽이 없어진 상태였다.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사항”이라고 보탰다.
그러나 구체적인 폭발 원인에 대해서는 합동참모본부와 탑승자들 간의 설명이 엇갈린다. 현재까지 침몰 원인으로 자체 폭발과 암초와의 충돌, 북한군에 의한 공격 등 세 가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합참 측은 정확한 원인이 분석되기 전까지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부 폭발, 외부 피격 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만약 외부로부터 피격돼 침몰됐다면 이는 북한의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남북 해군 간 대청해전에서 함정이 크게 파손당해 돌아갔다. 북한은 19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패하자 2002년의 2차 연평해전 때 기습 공격으로 보복한 바 있다. 북한이 도발했다면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잠수함(정) 또는 반잠수정에서 어뢰나 기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 승조원들이 탔던 구명정. | ||
군 당국은 내부 폭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천안함의 함포탄이 함정 앞부분만이 아니라 뒤쪽에도 분산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또 함정에 탑재하고 있던 폭뢰가 스스로 폭발했거나 함정의 밑바닥에 고인 기름 증기가 전기 스파크 등으로 폭발했을 소지도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함상에 묶여 있는 폭뢰는 폭발 수심을 입력해야 작동된다. 또 기름 증기는 고의로 불을 지르거나 폭약을 터트려야 폭발한다.
만약 내부 폭발이라는 점이 확인된다면 그 후폭풍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지 해군 측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군 일각에서는 내부 소행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합참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해군준장은 “탄약에 TNT를 장착해서 터뜨린다면 (탄약이 한꺼번에 터질) 가능성도 있다”며 관련 의혹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해군 측이 내부 폭발이나 외부 공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 탑승자들의 가족들은 배의 노후화가 원인이라는 전혀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천안함의 한 실종 가족은 27일 오후 최 함장과의 대화에서 “(실종된) 남편이 ‘천안함은 수리한 지 얼마 안 됐다. 배에 물이 새 세 번 수리를 했다’고 말했다”면서 배의 안전성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위험한 배라서 부대원들 간에도 승선을 기피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도 생존한 병사의 말을 빌어 “병기장은 탄약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면서 “우리 아들도 휴가 나와서 배가 오래돼 물이 샌다는 얘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 천안함 침몰과 관련하여 27일 각 방송사들이 춘추관에서 속보를 전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폭발 이후 구조 과정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해군 관계자들이나 생존자들의 증언을 정리해보면 배가 폭발하고 완전히 가라앉기 까지 최소 70분에서 최대 3시간까지의 시간이 있었다. 폭발로 엔진이 정지되고 함정 내 전력이 끊기면서 통신기기 전원이 차단되자 함장은 휴대전화로 육상 기지로 사고 소식을 알렸다.
이에 해군은 오후 9시 41분 백령도에 있는 고속정 4척에 출동지시를 내렸고 9시 58분에 사고지점에 도착했다. 이어 오후 10시 20분 잠수함 초계용 링스헬기 1대가 이륙해 1시간 뒤에 도착해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침몰하는 함정 위에 있던 승조원을 구한 것은 해경이었다. 현장 근처에 있던 해경정이 오후 10시 40분에 천안함으로 다가가 승조원 58명을 구조했다. 해군 측은 손도 쓰지 못한 셈이다.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결국 침몰한 천안함을 인양해야만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 당국의 대응은 화를 더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군은 사고 원인이나 구조 상황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수색결과를 밝히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라는 식의 해명만 되풀이해 실종자 가족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게다가 해군 측은 언론 취재는 물론, 외부와 생존자 간의 접촉도 철저히 막고 있다. 심지어는 함께 구조와 수색작업을 위해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해양경찰에조차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각종 음모론까지 난무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한시라도 빨리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