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군승진 로비사건을 수사하던 특수3부장이 돌연 사의 표명을 하면서 그 진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검 전경. | ||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를 이끌고 있는 양 부장은 검찰 내부에서도 뚝심 있는 검사로 유명하다. 그가 수사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다름 아닌 법조브로커 윤상림 씨다. 양 부장은 순천지청 검사 때인 1996년 2월 군 장성 및 판검사 등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폭력을 휘두르고 군납 알선과 구속자 석방을 미끼로 금품을 받아 가로챈 기업형 폭력조직을 소탕한 바 있다. 당시 연루됐던 핵심인물이 바로 윤상림 씨였다.
윤 씨는 특전사 등 군부대 장성에게 부탁해 납품을 하도록 해주겠다며 육류 도매업자에게서 6000만 원을, 구속된 인사의 가족들에게는 “알고 지내던 판검사들에게 부탁해 석방시켜 주겠다”며 접근해 8700만 원을 가로챘다. 윤 씨가 ‘아이디어’를 짜내면 조직폭력배들이 행동에 나섰다. 검찰이 윤 씨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현관엔 군에서 받은 감사패 수십 개가 있었고, 검찰 법원 군 경찰 간부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도 압수됐다.
당시 검찰은 윤 씨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에 양 부장이 사건 기록을 싸들고 김지형(현 대법관) 당시 순천지원 부장판사를 찾아가 “영장이 발부되지 않는다면 지방의 토호나 조직폭력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고 호소했던 일화는 지금도 검찰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양 부장은 이후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현 대법관) 밑에서 수사를 주도하기도 했다. 2005년 광주지검 형사 3부장으로 근무할 때는 맡은 부서가 ‘전국 최우수 형사부’로 뽑히는 명예를 안기도 했다.
이처럼 뚝심과 근성으로 검찰 내부에서 잘나가는 검사로 인정받던 그가 돌연 사의를 표명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검찰 내부에서는 최근 한 여성이 특수3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후 유산한 일을 표면적인 이유로 꼽고 있다.
지난 3월 25일 특수3부 강 아무개 검사는 서울 금천구청 간부의 딸인 여성 직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그는 조사를 받고 귀가한 이튿날 복통을 느껴 병원을 찾았으나 결국 태아를 유산했다. 이 여성은 당시 임신 9주 차였다. 특수3부는 금천구의 직원채용 비리를 수사하던 중 지난해 이 여성이 구청간부인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기능직에 채용된 의혹을 포착했다. 검찰은 그가 혼자 채용에 응시한 점을 주목, 그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측은 “조사하기 전에 이 여성의 임신 사실을 알았고, 임신한 점을 고려해 1시간 20분 정도로 신속히 조사를 마쳤다”고 해명했다.
이에 김준규 검찰총장은 당시 강압 조사가 있었는지 진상 조사를 지시했고 결국 강 아무개 검사는 3월 31일자로 형사부로 전보조치됐다. 검찰 주변에서는 강 아무개 검사가 전보조치됐지만 특수3부장인 양 부장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양 부장과 검찰 수뇌부 간에 갈등요소가 잠복돼 있었다는 것이 검찰 내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갈등의 배경에는 특수3부에서 수사하고 있는 신 아무개 대령 장군 승진 로비 사건(<일요신문> 932호 보도)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특수3부에서는 중견그룹 2세인 권 아무개 씨를 비롯한 몇몇 브로커들이 군부대 인근 골프장 인허가와 관련해 로비자금을 무차별 살포한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검찰은 브로커들이 로비를 시도하려 했던 대상인 신 대령이 장성 진급 대상자임을 감안해 청와대 측에 관련 로비를 펼쳤는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이 사건에 연관된 브로커들이 대부분 구속된 이후 수사는 더욱 활기를 띠고 있던 상황이었다. 수사진은 신 대령이 자신의 장군 승진로비 청탁과 함께 K투자개발 이 아무개 대표에게 2000만 원, 청와대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아무개 고려대 연구교수에게 1000만 원을 건넨 것을 확인하고 군 검찰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 또한 검찰은 브로커들로부터 “신 대령이 장군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청와대 행정관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양 부장은 이번 사건을 본인이 직접 인지해 수사를 진행했었고, 그만큼 수사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장군승진 로비 외에도 노동부 모 사무관의 비리 의혹과 정부지원금 횡령 의혹까지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수사진의 칼날이 청와대를 압박해 들어가고 있던 상황에서 수사를 지휘하던 양 부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해 무성한 뒷말을 낳고 있다. 여기에 검찰은 3월 29일 모 언론을 통해 “최근까지 수사를 진행했지만 청와대 측에 실제로 인사가 진행된 것 같지 않다”며 “이 전 교수를 기소하면서 수사를 종결했다고 보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양 부장과 윗선 간에 고성이 오고 가는 등 언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양 부장이 사의를 표명한 배경에는 최근 수사를 받던 여성이 유산한 불상사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장군승진 로비 건과 관련해 수뇌부와 마찰이 있었던 게 직접적인 원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수사의 목적지가 청와대 행정관 연루 여부라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의도 정가 주변에선 장군승진 로비 사건에 정권 실세 A 씨가 연루되어 있다거나 친박계의 아무개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란 루머도 나돌고 있다. 야당에서는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해 문제 삼을 태세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검찰이 이번 장군승진 로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명백히 규명하지 못할 경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곤경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