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후 태안해양경찰서 122 구조대원들이 연안경비정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일요신문>은 서해안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생존자를 수소문해봤다. 그러던 중 이들이 대부분 태안해양경찰청에 의해 구조된 사실을 발견하고 접촉을 시도했다. 태안해양경찰서 122 구조대가 살짝 공개한 이들의 ‘구조 일기’를 들여다보자.
“우리 아이 셋이 없어졌어요!” 2009년 7월 25일 태안군 남면 마검포 해수욕장. 조개 체험을 하고 돌아온 전 아무개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튜브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전 씨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듯 보이는 노란색 튜브를 발견했다. 다급한 마음에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튜브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전 씨는 122에 신고해 아이들을 찾아달라며 울부짖었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간조 때라 아이들은 벌써 거아도 부근 해역까지 밀려가 있었다.
태안해양경찰서는 공기부양정(호버크레프트)과 경비함정 등 3척을 동원해 수색 작업을 실시했다. 13여 분 지난 11시 50분경 구조대는 육지에서 약 3.3㎞ 떨어진 해상에서 표류 중인 아이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무사히 구조했다.
전 씨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면서 “3년간 서해안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표류 사건 이후 아이들이 물이 무섭다고 말해 올해 여름엔 바다로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구조한 한상영 경장은 31일 전화인터뷰에서 “함정이 다가가자 남자아이는 놀라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내가 내미는 손을 잡더라. 꼬마 녀석이 어찌나 의젓하던지 놀랐다”면서 “바다에서 표류하게 될 경우 움직이지 말고 차분히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발버둥 치면 조류를 따라 더욱 빠르게 이동하게 된다”고 조언했다.
하룻밤을 표류하다 구조된 사례도 있었다. 2009년 8월 5일 김 아무개 씨 등 3명은 여름 피서를 즐기기 위해 꾸지나무꼴 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늘진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던 이들은 비가 내리자 보트 계류장으로 사용하는 가로, 세로 각각 5m가량의 바지(운하, 하천, 항내에서 사용하는 밑바닥이 편평한 화물 운반선)로 자리를 옮겼다. 소주 3병을 나눠 마신 후 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바닥의 흔들림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난 김 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퍼런 바다 한가운데 떠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닌 것이다.
겁이 난 김 씨는 익일 오전 7시 5분경 해양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다. 이우석 경사는 이들을 경비함정에 옮겨 태우고 바지를 예인하여 오전 8시 30분경 학암포 선착장에 안전하게 정박시켰다. 3월 31일 기자와 만난 이 경사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기상 상태가 양호했기에 망정이지 비라도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면서 “서해안 바다의 특성을 잘 인지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연료 부족으로 표류하던 레저보트를 구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16일 태안군 소원면 신도 남동방 해상에서 연료와 장비 점검을 소홀히 한 정 아무개 씨 등 4명이 표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경사가 출동했을 당시 자욱하게 낀 짙은 안개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보트끼리 부딪히면 또 다른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경사는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조심히 주변을 탐색했고 정 씨 등 4명을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구했을 때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중독된다고 할까. 그 순간을 맛본 이는 앞 다퉈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해양경찰에겐 1분 1초가 소중하다. 체온이 30도 이하인 상태가 1시간 동안 지속되면 익수자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31일 기자와 만난 태안해양경찰서 122구조대 문병길 경사는 초를 다투는 서해안 구조 현장을 생생하게 스케치해줬다. 지난해 7월 말 간조 때에 어머니와 아들이 조개를 잡고 있었다. 만조 때가 다가오자 물이 허리춤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들은 잡은 조개를 버리고 빨리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아까워서 못 버린다”며 조개 봉지를 놓지 않는 바람에 물살에 휘말리고 말았다. 아들은 근처에 떠다니는 스티로폼을 잡아 어머니를 태웠고 자신은 그 스티로폼 끝을 붙잡고 표류하게 됐다.
신고를 받고 온 해경에 의해 구조됐지만 아들은 이미 물이 폐로 유입돼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기도를 확보하고 이물질을 제거한 뒤 119 구조대에 후송했으나 아들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태안해경 122 구조대원들은 모두 SSU(해난구조대), UDT(해군특수전여단) 등 특수구조대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다. 24시간 동안 3교대로 순환근무를 하며 비상사태에 대비한다. 이들은 “실종자를 수색할 때 생존자보단 시신을 찾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간단한 인공호흡 방법을 비롯해 사소한 안전 수칙만 지켜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천안함 실종자를 수색하다 지난달 30일 순직한 UDT 한주호 준위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거센 조류, 검은 어둠 속에서 수색을 펼치는 구조대원 모두 답답한 심정일 것이다”며 “그들의 노력과 수고를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