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오너리스크를 앓고 있는 재계 분위기와는 달리 신사업 발굴과 후계 승계 등 조용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은 LG 트윈타워.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1월에 있었던 LG그룹 정기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새삼 거론하는 까닭은 그 양상이 다른 대기업들과 확연히 비교되기 때문이다. 재계 1위 삼성은 물론 재계 3위 SK 역시 올해 임원 인사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삼성은 지난해 부회장·사장을 포함해 임원 승진자가 483명이었지만 올해는 356명에 그쳤다. 지난해보다 26.3%에 해당하는 127명이 감소했다. 부회장 승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SK그룹은 더하다. SK는 지난해 141명의 임원이 승진했지만 올해는 24명(17%) 줄어든 117명이 승진했다. 수치상으로는 삼성보다 감소폭이 작지만 분위기는 침통했다. 실적이 좋았던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대표 계열사들의 사장단이 교체된 데다 100여 명의 임원이 회사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이미 임원 인사를 단행한 재계 7위 현대중공업그룹도 무려 31%에 해당하는 81명의 임원을 감축했다.
수시인사를 실시하는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연말 정기 임원 인사 규모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롯데 역시 그동안 매년 2월에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해왔던 것을 앞당겨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규모가 예년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안정을 추구하는 재계 트렌드도 요인이지만 제2 롯데월드의 잇단 사고로 대국민사과까지 한 상황에서 승진잔치를 벌이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LG그룹은 또 조직개편을 통해 전자·화학·디스플레이·이노션·유플러스 등 계열사별로 신사업을 발굴하는 전담 팀을 꾸려 내년에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경영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올 연말 대부분 기업이 실적 부진으로 울상을 짓고 있지만 LG는 웃고 있다”며 “내년 경제 전망이 어두워 기업들이 움츠러들 때 LG가 시장 선점과 성장에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그룹 대표 계열사들의 올해 실적은 양호한 수준이다. LG전자는 지난 3분기 매출액 14조 9163억 원, 영업이익 4612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늘었으며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결과였다. LG전자를 어려움에 빠뜨렸던 스마트폰 부문에서 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3분기 6조 5469억 원의 매출에 4741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3892억 원을 기록한 전년 동기 대비 21.8% 늘었으며 직전 분기 대비로는 190.7%나 급증했다.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LG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들의 지난 3분기 실적 역시 대부분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호조를 보였다.
LG전자 등 대표 계열사들의 올해 실적은 양호한 수준이다. 일요신문DB
다만 LG전자와 함께 그룹의 양대 축으로 불리는 LG화학의 실적 부진이 걸림돌이다. 그렇지만 그룹 차원의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다른 곳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LG화학 관계자는 “대외 여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대기업 관계자는 “대규모 조직개편과 구 상무 승진 배경에는 실적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LG는 최근 꽤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조용한 모습이다. 오죽하면 오너 4세인 구 상무의 승진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정도다. LG의 ‘정중동’ 행보에는 다른 기업들의 탓도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후계구도를 짜느라 연일 분주하고, 현대차는 한전 부지 고가 매입 논란에 이어 한라비스테온공조 매각 건으로 바쁘다. 그런가 하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리턴’ 사건과 제2 롯데월드의 잇단 사고로 재벌가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LG에 시선을 줄 상황이 아니라는 것.
상대적으로 ‘오너 리스크’가 없다는 점이 연말 어수선한 재계 분위기에서 LG가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LG그룹 관계자는 “다른 기업 일을 신경 쓰기보다 우리 일을 계획했던 대로 추진해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LG가 조용하다기보다 다른 기업이 워낙 시끄럽다”며 “LG로서는 조직개편과 후계 승계 작업에 대해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