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서울 노량진에 있는 S보육원. ‘도시 속의 작은 섬’처럼 조용하기만 했던 이곳에 지난 3월8일 소동이 벌어졌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생후 59일된 아기 수인(가명·남)이가 없어진 것.
이날 오후 8시가 조금 넘어갈 무렵 수인이를 돌보고 있던 생활지도사 이경란씨(가명·48)가 옆방에 잠시 다녀온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보육원에서는 전전긍긍했다. ‘1년만 맡아주세요. 꼭 찾으러 오겠습니다’라며 친모가 남겨 놓은 편지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백방으로 아이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보육원. 하지만 아이의 행방은 끝내 오리무중이었고, 결국 보육원 관계자는 그날 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보육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시작했다. 유력한 용의자는 대강 두 명으로 압축됐다. 일단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사라진 아이의 친모가 아이를 도로 데려갔을 가능성이 대두됐다.
수인이 친모의 경우 아이를 처음 보육원에 맡길 때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 온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아이를 좀 맡아주세요. 나중에 돈 벌어서 꼭 찾으러 올게요…”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 탓에 신원은 물론 얼굴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은 수인이가 사라진 날 자원봉사자로 왔던 고연우씨(가명·여·23). 마침 보육원 관계자들도 그녀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던 참이었다. 보육원 관계자에 따르면 고씨는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퇴근한 오후 8시 이후에도 보육원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가 보육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의심은 충분하지만 단서가 없었다. 자원봉사자로 지원할 당시 대개 인적사항을 파악하기로 돼 있었지만 그녀는 이런저런 핑계로 인적사항 기재를 뒤로 미뤘고, 보육원측에서도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그녀가 무심결에 남겨 놓은 한 마디였다.
보육원 관계자에 따르면 고씨는 “3년전에 인천의 A보육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는 말을 했다. 이 한마디를 유일한 단서로 무작정 인천 A보육원으로 내려갔다. 경찰은 그곳에서 보육원 관계자들이 설명한 ‘20대 중반의 뚱뚱하고 없어보이는’ 여성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착잡한 심정으로 그만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글쎄, 3년 전쯤 비슷한 외모를 지닌 여자가 오긴 왔었는데….”
A보육원 고참 여직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경찰의 다급한 물음에 여직원은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자원봉사자로 온 것은 아니었구요, 당시 고아무개란 여자가 자기 아기를 3일쯤 맡겨 놓고 찾아간 일이 있어요.”
경찰은 당시 그녀가 남겨 놓은 주소를 바탕으로 지난 10일 고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에 검거된 고씨는 아이를 ‘훔쳐야만’ 했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고씨가 아이를 데려가게 된 이유는 5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지난 98년 경기도 A대학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고씨의 삶은 또래의 친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해 봄 채팅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삶은 그동안의 삶과 전혀 다른 방향을 틀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 남편이 될 신용철씨(가명·23)를 만난 것.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를 알게 된 고씨. 둘 사이의 관계에 있어 신씨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그녀는 지난 97년 7월 처음으로 남자가 있던 경남 양산으로 내려갔다.
당시 신씨는 대학에 재학중인 관계로 양산에서 자취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고씨는 신씨의 자취방이 있는 양산을 오갔고, 그 결과 얻은 것이 뜻하지 않은 임신이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임신 6개월이 될 때까지 고씨 본인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 결국 지난 2000년 6월9일 자신의 부천 집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말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이 아이를 낳으니 고씨 어머니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했다.
이즈음 인천 A보육원에 3일간 아이를 맡긴 것도 어머니의 성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씨는 어머니 몰래 아이를 도로 데려왔다. 자신이 키우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태가 이쯤되자 양가의 어른들이 나섰다.
아이를 엄마 혼자 키우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허락하게 된다. 이때가 지난 2001년 1월이었다. 비록 혼인신고는 마쳤지만 남편 신씨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결혼이었다. 아이 출산 한 달 뒤인 지난 2000년 7월 곧바로 군에 입대한 것도 이런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달콤한 신혼살림이 있을 리 없었다. 고씨는 고씨대로 부천 친정에 계속 머물렀고, 이따금 면회나 휴가 등의 방법으로 남편 얼굴이나 잊지 않고 지낼 따름이었다. 이런 가운데 고씨는 지난해 2월 덜컥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군대에서 이 소식을 들은 신씨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지우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지난 4월 고씨는 산부인과를 찾아 아이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둘 사이의 갈등은 깊어져 갔다. ‘가끔 휴가라도 나오면 돈만 가져가거나 바람만 피우는’ 남편에게 고씨는 차츰 불안감을 느꼈다.
급기야 남편은 지난해 7월 말년 휴가를 나와 “경남 합천에 계신 시어머니가 아픈데 내려오지도 않았다”며 고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쯤되자 고씨는 “둘째 아이라도 생기면 남편도 철이 들 것”이라고 충고했던 아는 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해 4월 남편 말대로 둘째 아이를 지운 것을 뒤늦게 가슴을 쳐야 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올해 2월28일, 신씨의 호적에는 ‘수민’(가명)이란 이름의 사내아이가 새롭게 이름을 올린다. 출생일자는 12월7일로 돼 있었다. 둘째 아이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컸던 고씨가 있지도 않은 아이를 호적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자기 딴에는 ‘지난해 2월 임신한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아 버렸다’고 신씨를 속일 요량이었다. 문제는 남편에게 보여줄 실제 아이가 없었던 것. 며칠간 고민을 거듭한 고씨의 선택은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적당한 보육원을 물색하던 고씨의 눈에 띈 곳이 바로 서울 노량진에 있는 S보육원이었다.
결국 고씨의 자백과 함께 사건의 전모는 드러났다. 하지만 한 가지 남는 의문은 범행동기. 그녀는 “둘째 아이라도 있으면 남편이 마음을 돌릴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며 끝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