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2월28일 이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벌어진 이 패싸움은 총기 사고까지 불러온 끝에야 겨우 진정됐다는 것. 당시 이 사건은 태국 경찰 당국은 물론 교민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건장한 체구의 젊은 사내들이 태국까지 원정을 가서 집단 패싸움을 벌여야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교민에 따르면 관광지로 인기가 높은 태국에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 따위를 판매하는 한국인 상가가 상당수 진출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자연히 한국인 관광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들 한국인 기념품센터는 국내 여행객을 태국으로 알선해주는 여행사에게 약하다는 것. 때문에 여행사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판촉비’나 ‘세일즈 비용’ 등의 명목으로 심심찮게 돈을 받아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돈이 오가는 문제다보니 이 과정에서 기념품센터와 여행사간에 빈번히 시비가 일어난다. 이번 사건도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현지 수사기관에 의하면 패싸움을 벌이던 중 먼저 총기를 발사한 쪽은 태국에서 기념품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황아무개씨 등이었다. 반면 총에 맞은 쪽은 현지 여행사 대표 박아무개씨와 그의 선후배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월에도 비슷한 이유로 한 차례 맞붙은 적이 있었다. 황씨측에서 여행사 대표 박씨에게 “돈을 건넸는데도 왜 관광객들이 오지 않느냐”며 따진 것이 싸움의 빌미가 됐다는 얘기.
당시에는 황씨측이 일방적으로 밀려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2월28일에 벌어진 총격 사건은 당시 싸움에서 당한 황씨측이 박씨측에 사과를 요구하며 시작됐다.
황씨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모찬코트 호텔 로비라운지로 향한 7명의 박씨측 젊은이들. 공교롭게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황씨측도 짝이라도 맞춘 듯 7명이었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어갈 무렵 로비라운지에서 맞닥뜨린 두 세력. 애초에는 화해를 위한 자리였지만 한쪽에서 완전히 양보하지 않는 이상 화해란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씩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상대방의 뺨을 후려치는 것으로 싸움의 도화선을 당겼다.
이때부터 순식간에 건장한 체구의 20∼30대 젊은이들 열댓 명이 뒤엉켜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싸움이 시작된 뒤 5분쯤 지난 후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갑작스레 한 방의 총소리가 호텔 로비에 울려퍼졌다.
서울에서 원정온 여행사 대표 박씨측에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던 기념품 업체측 관계자인 정아무개씨(20대 후반)가 권총을 발사한 것. 치열하게 전개되던 싸움은 이 한 발의 총성으로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호텔 안이 아수라장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총에 맞은 피해자들은 총소리에 겁을 먹고 도망가기 시작했고, 총을 쏜 쪽 역시 달아났다. 미처 자리를 뜨지 못한 가해자측의 어아무개씨(25·부산 기장군)와 총에 맞은 박아무개씨(27·서울), 두 사람만이 호텔 관계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태국 경찰에 연행됐다. 오른쪽 다리를 총알에 스친 박씨의 부상은 가벼웠다.
사태가 예상 밖으로 커지자 양쪽 모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어씨가 경찰에서 “나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얼떨결에 이렇게 경찰에 붙잡혔다”고 말한 것이나 피해자 박씨가 “나도 저 사람(어씨)을 모른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한 것도 사태의 확산을 우려한 행동이라는 것이 현지 수사 관계자들의 추측.
게다가 어씨는 다음날 곧바로 법원에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으며 총에 맞은 박씨 역시 첫날 경찰 조사를 마치고 다음날 한국으로 출국해버려 수사는 사실상 끝나고 말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태국 경찰에 엄중한 수사를 요청하는 한편 외교통상부에 사건 개요를 보고했다.
한 교민은 “태국 교민 가운데 대부분은 한국인들끼리 남의 나라에서 패싸움을 벌인 이번 사건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다만 많은 교민이 관광수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현지의 반응을 전했다.